오피니언 사설

소탈하게 소통 의지 보인 대통령의 행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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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문재인 대통령의 취임 첫날 행보는 신선했다. 낮은 자세로 정치권·언론·국민과 소탈하게 소통하려는 모습을 보였다. 그동안 우리 국민은 ‘친문 패권주의’의 오만한 이미지 때문에 대통령에 당선하면 독선·독주할 것이라는 의심을 거두지 못한 게 사실이다. 문 대통령 본인도 아들의 특혜 채용 의혹에 “고마해라 이놈들아”라고 일축하고 TV 토론 때도 상대 후보에게 “우리 본부장하고 토론하세요”라는 발언으로 불통 우려를 낳았다. 그러나 첫날 모습은 그런 오해를 씻고도 남을 만큼 진정성이 엿보였다.

문 대통령이 이날 현충원 참배 후 사실상 첫 공식 일정으로 원내 5당 대표를 찾은 것은 국회를 중시하고 타협의 정치를 상징하는 동선이다. 특히 가장 먼저 찾아간 곳이 제1야당인 자유한국당 지도부인 점도 의미가 크다. 문 대통령은 정우택 원내대표를 만나 “국정 동반자로 생각하고 안보 정보를 공유하겠다” 고 했다. 야당과의 소통 의지를 행동으로 보여준 것이다. 이를 두고 정세균 국회의장은 “사이다 같은 행보다. 국민이 기대하는 협치에 부응하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무엇보다 문 대통령이 청와대 춘추관에 나와 이낙연 국무총리·서훈 국정원장 내정자와 임종석 비서실장의 인선 배경을 직접 설명한 것은 각별한 의미가 있다. 권위에 얽매이지 않고 개방적이며 소탈하다는 인상을 심어 주기에 충분했다. 지난 정권에서 청와대 대변인이 대독해 왔던 것과 전혀 다른 모습이다. 미국 대통령들이 주요 참모 인선을 직접 발표하는 장면과 겹쳐지는 대목이다. 특히 이 총리·서 국정원장 내정자에 대해 국회가 신속한 청문절차를 밟아 주도록 “정중히 요청한다”는 표현을 썼다. 대통령이 “주요 사안은 기자회견을 통해 내가 국민에게 직접 알리겠다”고 한 약속을 임기 끝까지 지킨다면 이전 대통령들과는 확연히 차별화될 것이다.

문 대통령은 취임사도 국민 눈높이에 맞췄다.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퇴임하겠다” “대통령 권력을 혼자 쓰지 않고 나눠주겠다”는 선언 등도 눈에 띄었다. 모두 쉽게 이해되고 진정성이 느껴진다는 반응을 얻었다. 우리는 문 대통령의 ‘광화문 시대’ 공약도 하루빨리 실현되길 기대한다. 청와대 집무실을 광화문 정부종합청사로 옮기고 대통령이 퇴근길에 시민들과 막걸리잔을 나눈다면 우리 공동체는 또 한 단계 도약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