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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론

사드와 관련한 트럼프의 잘못된 인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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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이성출전 한미연합사 부사령관

이성출전 한미연합사 부사령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달 로이터통신과 워싱턴타임스 회견에서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사드) 체계 비용을 한국이 부담해야 한다고 말했다. 북핵 위협이 현실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사드 배치가 우리에게 군사 안보 측면에서 매우 긴요함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한·미 양국은 지난해 3월 실무그룹을 구성하고 사드 배치에 대한 협의를 시작했다. 실무그룹에서 합의한 결과를 그해 7월 한·미 공동으로 발표했고, 이때 비용 문제도 당연히 약정서에 포함했을 것이다. 그런데 트럼프 대통령이 한·미 합의 사안을 뒤집는 견해를 보여 한국은 사드로 인해 미국과 중국으로부터 협공을 받고 있는 형국이 되고 있다.

미군부대 무기체계 비용 사안은 #한미상호방위조약에 명시돼 있어 #한국은 부지제공 등만 이행 의무 #트럼프의 비용요구는 합의 위반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은 두 가지 측면에서 잘못된 인식을 갖고 있는 듯 보인다. 첫째, 트럼프 대통령이 한·미 동맹의 기본틀인 상호방위조약과 주한미군지위협정(SOFA), 방위비분담금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사드는 주한미군이 운용할 무기체계다. 미군이 사용할 무기체계(장비)를 한국 영토에 배치할 경우 법적 뒷받침을 하는 게 한·미 상호방위조약이다. 이 조약은 “미국은 육해공군을 한국 영토 내와 그 부근에 배치할 수 있는 권리를 갖고 한국은 이를 허락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또한 미군 부대와 무기체계가 상호방위조약에 따라 한국에 들어올 경우 비용과 절차는 SOFA가 규정하고 있다. 이 규정에 따르면 주한미군이 사용할 무기체계(장비)는 미 측이 비용을 부담하고, 필요한 부지와 시설은 한국 측이 제공한다. 한국이 롯데 골프장을 사드 부지로 제공한 이유다.

한편 미군이 한국에 들어와 주둔하면서 발생하는 비용 가운데 일부를 한국이 지원하는데, 이를 방위비분담금이라고 한다. 분담금은 SOFA 제5조에 따라 5년 단위로 한·미가 총액을 결정한다. 방위비분담금은 크게 세 가지 항목으로 되어 있다. 주한미군을 돕기 위해 고용된 한국인 근로자의 인건비, 군사시설비, 군수지원비 등이다. 이번 사드 배치의 경우 기반시설과 탄약고, 무기고 등을 신축해야 한다. 여기에 드는 비용은 이미 합의된 방위비분담금 내에서 제공한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사드 비용 전체를 한국 측에 부담하도록 하겠다는 트럼프 대통령 발언은 주한미군 주둔의 규정과 절차에 부합되지 않는다. 재협상할 수 있다는 백악관 안보보좌관의 말도 적절하다고 볼 수 없다. 설령 재협상을 하더라도 달라질 게 없다.

둘째, 트럼프 대통령은 한·미 동맹과 주한미군, 동북아에서 한국이 갖는 전략적 가치를 낮게 평가하는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대통령은 자국 우선주의를 내세우고 한국처럼 경제적 능력을 갖춘 국가로부터 이익을 극대화하려는 생각인 것 같다. 하지만 한국과 미국은 자유를 위해 함께 싸우고 신뢰를 바탕으로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기본가치를 공유하는 혈맹이며, 세계가 부러워하는 성공한 모범적 동맹이다.

주한미군은 한국군과 공동으로 한국을 방위하고 있지만 동북아 안정과 균형 유지의 린치핀(linchpin·핵심 동반자) 역할을 함으로써 미국의 전략적 이익도 지키고 있다. 평택 미군기지는 동북아 허브 기지로서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 확대에 유리한 환경을 제공해주고 있다.

특히 한국은 대륙 세력과 해양 세력의 접점에 위치한 전략적 요충지다. 이러한 지정학적 특수성은 미국의 동북아 전략 구현에 중요한 기능을 한다. 이뿐만 아니라 한국은 경제적으로도 미국의 다섯 번째 교역국이다. 미국산 쇠고기를 가장 많이 수입하는 나라다. 한국의 안보 무임승차 주장, 그 대가로서의 방위비분담금 인상, 자유무역협정(FTA) 재협상을 통해 유리한 교역 조건 등을 만들겠다는 의도는 한·미 동맹의 특수성(혈맹관계)을 이해하지 못한 비즈니스 사고라고 본다. 따라서 트럼프 대통령은 주한미군과 한국이 갖는 전략적 가치가 미국 국익에 직결된다는 점을 정확히 인식해야 한다.

결론적으로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은 한·미 상호방위조약과 SOFA, 그리고 한·미 동맹의 특수성을 감안할 때 납득하기 어렵다.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이 그의 개인적 견해일 경우 참모와 장관의 전문적 조언에 의해 해소될 수 있다. 그렇더라도 2018년도에 예정된 방위비분담금 협상 때 트럼프 대통령의 견해는 분담금 인상에 크게 영향을 줄 것으로 예상된다. 만약 트럼프 대통령이 충분한 정보를 갖고도 이런 발언을 했다면 향후 한·미 관계에 큰 파장이 예상된다. 사드 장비 비용(10억 달러)을 한국이 부담하게 된다면 주한미군이 사용할 무기를 한국이 구매해 주한미군에 다시 대여해 주는 셈이 된다. 이는 전례를 찾아볼 수 없다. 한·미 동맹 64년 동안 주한미군이 사용할 무기의 구매를 한국에 강요하는 첫 사례가 될 것이다.

또 동맹국이 국정 혼란에 처한 상황에서 외교적 압력을 행사하는 것처럼 보인 발언의 측면에도 우려를 금할 수 없다. 따라서 우리는 하루빨리 국가 리더십을 확립하고 국정을 안정시켜야 한다. 새 정부는 한·미 관계의 현주소를 냉철히 평가해 희망적 기대보다는 새롭고 실효적인 동맹의 미래를 열어 가도록 외교적 노력을 해야 할 것이다.

이성출 전 한미연합사 부사령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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