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화만사성] 1형 당뇨병은 선천성 질환입니다, 나쁜 생활습관 탓이 아닙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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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식을 확 바꾸자

자가면역 이상 원인 #췌장 베타세포 파괴 #인슐린 전혀 안 나와 #매일 4회 주사 맞아


아플 때 약을 투약하는 것은 당연하다. 선천적으로 몸이 약하다면 어릴 때부터 약을 달고 살아야 한다. 하지만 매일 주사를 맞는다는 이유로 손가락질이나 곱지 않은 시선을 받는다면 어떨까. 그렇다고 치료를 소홀할 수도 없다. 치명적인 합병증으로 병이 악화할 수 있어서다. 그래서 최대한 병을 감추기 바쁘다. 바로 선천성 소아 당뇨병(1형 당뇨병) 환자 얘기다.

1형 당뇨병 환자는 태어날 때부터 자가면역 이상으로 췌장의 베타세포가 파괴돼 인슐린이 전혀 분비되지 않는 병이다. 전체 당뇨병 환자의 5~10%는 1형 당뇨병 환자다. 주로 영유아나 청소년기에 갑자기 발병한다. 식습관이나 운동 부족, 비만과는 상관이 없다. 체중도 일반인과 비슷하거나 오히려 저체중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1형 당뇨병은 일단 한번 발병하면 현대의학 기술로는 완치가 불가능하다. 인위적으로 인슐린을 보충하는 방식으로 혈당을 조절해야 한다. 일반적인 2형 당뇨병과는 치료·관리법이 전혀 다른 이유다.

인슐린은 주사제 형태로만 보충이 가능하다. 인슐린이 위산에 약하고, 소장에서 흡수되지 않아 먹는 약 형태로는 개발이 어렵다. 매일 하루 네 번씩 인슐린 주사로 혈당을 조절하는 것만이 유일한 치료법이다. 공복 혈당을 관리하기 위한 기저 인슐린 주사를 1번, 식사 전에 투여하는 초속효성 인슐린 주사 3번이 기본이다. 그날 몸 상태에 따라 혈당이 조절되지 않을 땐 추가로 인슐린 주사를 맞는다. 1형 당뇨병은 2형 당뇨병보다 혈당 조절이 어려워 조금만 소홀해도 당뇨 합병증으로 진행하기 쉽다.


응급 대처 가이드라인 필요

문제는 어릴 때부터 매일 주사를 맞는 것보다 이를 바라보는 주변의 시선이다. 부모가 훈육을 잘못했다거나 아이가 게을러서 운동을 안 하고 나쁜 음식만 먹어서 당뇨에 걸렸다고 쓴소리를 한다. 인슐린 주사를 놔주다가 아동학대로 의심받기도 한다. 어린이집에서는 혈당 관리가 까다롭다는 이유로 입소 자체를 거부당한다. 진학해도 어려움은 여전하다. 어릴 때는 부모가 혈당 관리를 도왔지만 학교에서는 아이 스스로 혈당을 관리해야 한다. 하지만 학교 보건실에서조차 혈당 관리를 위한 도움을 받기 어렵다. 저혈당으로 쓰러지는 응급 상황 발생 시 대처법에 대한 가이드라인조차 없다. 오히려 왕따당할까 봐 아이 혼자 화장실에 숨어서 주사를 맞는다. 인슐린 주사를 투약한다는 이유로 또래 집단과 어울리지 못하고, 당연히 받아야 할 교육조차 보장받지 못하는 셈이다.

열이 나면 해열제를 먹듯 1형 당뇨병 환자는 인슐린 주사 치료를 받아야 한다. 을지대병원 내분비내과 한경아 교수는 “1형 당뇨병 환자는 인슐린 주사 치료로 혈당을 관리하는 것만으로도 건강한 사람과 마찬가지로 일상생활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반면에 미국에서는 1형 당뇨병을 누구나 발병할 수 있고 치료할 수 있는 질환으로 인식한다. 공공장소에서 스스럼없이 인슐린 주사기를 꺼내 주사한다. 미국당뇨병학회와 미국당뇨병교육자협회는 1형 당뇨병 환자를 위한 가이드라인을 만들어 교육한다. 1형 당뇨병을 앓고 있는 사람들도 사회 곳곳에서 적극적으로 활동한다. 2014년 미국 미스 아이다호에 뽑힌 시에라 샌디슨은 당뇨병 치료 기기인 인슐린 펌프를 착용한 채 비키니 수영복 심사를 받았다. 또 미국의 수영선수 게리홀 주니어는 1999년 1형 당뇨병이 발병한 뒤 혈당을 관리하면서 3개의 올림픽 금메달을 추가했다. 한경아 교수는 “국내에서도 1형 당뇨병을 앓고 있는 아이들이 충분히 보호받고 교육받을 수 있도록 사회적 관심과 지원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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