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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정부 '38선 넘지 않는다' 비핵화땐 체제보장 카드 내비쳤다

중앙일보

입력

북한을 향해 선제타격과 같은 극단적 방법을 꺼내 들었던 도널드 트럼프 미국 정부가 3일(현지시간) 대북 정책의 또 다른 이면을 보여줬다. 북한의 김정은 정권을 상대로 38선을 넘어가지 않겠다는 ‘체제 보장’ 카드를 내비쳤다. 북한이 비핵화로 나설 경우다. 트럼프 정부가 추진하는 한반도 정책의 최대 당면 목표는 흡수 통일이 아닌 북한 비핵화 임을 시사한다.

지난달 28일(현지시간) 뉴욕 유엔본부에서 열린 안전보장이사회에서 발언하고 있는 렉스 틸러슨 미국 국무장관[AP=뉴시스]

지난달 28일(현지시간) 뉴욕 유엔본부에서 열린 안전보장이사회에서 발언하고 있는 렉스 틸러슨 미국 국무장관[AP=뉴시스]

렉스 틸러슨 국무장관은 이날 국무부 직원들을 대상으로 한 연설에서 “(대북 정책 목표는) 북한의 정권 교체, 정권 붕괴, 통일 가속화가 아니며 38선을 넘어 북으로 올라가려는 구실을 찾는 것도 아님을 우리는 분명히 해 왔다”고 밝혔다. 틸러슨 장관은 “북한의 미래 안보와 경제 번영은 비핵화에 의해서만 달성된다는게 우리가 전하려는 분명하고도 단호한 메시지”라고 강조했다. 틸러슨 장관이 “북한은 자신들의 미래를 보장받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이 핵 무기라고 믿고 있기 때문에 이를 갈망한다”고 언급한 뒤 곧바로 이같이 밝혔다.

지금까지 트럼프 정부 인사들은 “모든 옵션이 테이블에 있다”고 강조해 왔다. 이는 대북 정책에 군사적 수단이 포함됐다는 의미로 해석됐다. 보수 매체인 워싱턴 프리비컨에 따르면 레이먼드 토머스 통합특수전사령부 사령관은 2일 하원 군사위 소위에서 미군은 한반도 유사시 북한의 핵ㆍ미사일ㆍ화학무기 시설을 타격해 무력화할 준비가 돼 있다고 답변했다. 특수부대의 북한내 작전을 뜻한다. 하지만 이날 틸러슨 장관은 “정권 교체가 아니다”라는 기존 표현을 넘어 ‘38선’ ‘통일’이라는 단어까지 사용하며 체제 보장을 시사했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는 “미국은 흡수 통일을 추진하지 않겠다는 예고나 다름없다”며 “비핵화를 하면 그렇다는 것”이라고 풀이했다.

 이로서 트럼프 정부의 대북 정책은 말 그대로 최고의 압박과 최고의 관여(engagement)라는 게 더욱 분명해졌다. 최고의 압박이 유사시 군사 공격이라면 최고의 관여(engagement)는 김정은 정권에 대한 인정이다. 이를 통한 북ㆍ미간 직접 대화다. 내용에선 양 극단이지만 트럼프 정부에선 동전의 양면이다. 비핵화를 거부하면 미국은 이를 저지하기 위해 무엇이건 할 수 있지만 비핵화를 수용하면 북한의 최대 관심사인 체재 보장을 논의할 수 있다는 의미가 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현재 트럼프 정부가 추구하는 한반도 정책의 목표는 비핵화된 한반도 평화 통일이 아니라 비핵화 자체라는 분석이 힘을 얻고 있다. 이는 미국 민주당의 시각과 사뭇 차이가 난다. 힐러리 클린턴 캠프의 외교안보 핵심이던 로라 로젠버거는 지난해 2월 “클린턴이 집권하면 한반도 정책의 궁극적인 목표는 비핵화된 한반도의 평화 통일”이라고 밝혔다. 이와 비교하면 트럼프 정부는 체제 보장 카드까지 제시하며 비핵화에 올인(all in)하는 접근을 하고 있다.

 김정은 체제를 대화 상대로 인정하려면 인권이 또 다른 변수다. 버락 오바마 정부는 지난해 김정은을 인권 유린의 책임자로 지목해 제재 대상에 올리는 초강수를 뒀다. 인권은 대북 압박 정책의 또 다른 축이었다. 그런데 틸러슨 장관은 이날 북한을 향한 얘기는 아니었지만 인권 정책을 일반론으로 거론하며 민감한 주장을 내놨다. 그는 인권과 자유는 변하지 않는 미국의 가치라고 강조하면서도 “다른 이들도 우리가 오랜 역사를 거쳐 도달한 이 가치를 따라야 한다고 너무 과도하게 조건을 걸면 우리의 국가적 안보 이익과 경제적 이익을 증진시키는데 장애가 된다”고 밝혔다. 대북 인권 압박 수위를 높이지 않겠다는 의미다. 로이터 통신은 “미국이 대외 관계에서 인권에 대한 관심사를 덜 강조할 것이라는 신호를 보냈다”고 해석했다.

 틸러슨 장관이 체재 보장 카드를 내비췄지만 대북 압박은 오히려 이제 시작이다. 틸러슨 장관은
“우리는 (북핵 해결을 위한)전략의 20~25% 수준에 있다”며 “북한을 지속해서 압박하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여전히 많이 남아 있다”고 주장했다. 아직 꺼내들지 않은 대북 제재 수단이 많으며 북한이 비핵화를 거부하면 단계를 높일 것이라는 예고다.

틸러슨 장관은 트럼프 대통령이 언급한 대북 대화 용의에 대해서도 미국의 입장을 설명했다. 그는 “협상 테이블로 가는 길을 놓고 협상하지 않겠다”며 “이건 북한이 지난 20년간 해온 것”이라고 일축했다. 그는 대신 “북한이 적절한 조건에 따라 (협상에) 앉을 준비가 됐을 때 우리는 앉을 것”이라고 밝혔다. 북한이 행동을 바꿔야 대화에 돌입하며 북한을 대화 테이블로 이끌어내기 위한 대가를 논의하는 대화는 없을 것이란 얘기다. 워싱턴=채병건 특파원 mfemc@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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