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마 대학생을 기억하시나요? 똑같은 수법으로 200여명 울린 잔당들

중앙일보

입력

그때 그 모습으로 ‘거마 대학생’이 다시 나타났다. 2011년 중앙일보의 보도(본지 2011년 9월20일 <거마 대학생 5000명 ‘슬픈 동거’>)로 처음 알려진 이들은 서울 송파구 거여동ㆍ마천동 일대에서 합숙하며 불법 다단계 판매 일을 하던 대학생들을 일컫는 말이다.

2011년 9월. 본지가 보도한 거마대학생의 실태

2011년 9월. 본지가 보도한 거마대학생의 실태

당시 거마 대학생들의 중간관리자로 활동하던 정모(30)씨 등 4명은 서울 강남ㆍ서초구 일대에서 제2, 제3의 ‘거마 대학생’을 만들고 있었다. 주요 타깃은 지방에서 취업을 준비하는 20대 초중반의 대학생들로, 강남구 역삼동과 서초구 양재동 일대 반지하에 숙소를 마련하고 판매원을 모집했다.

이들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나 지인을 통해 1차로 접촉했다. “요즘 취업할 곳도 마땅치 않고 취업을 해도 별 볼일 없다. 서울에서 열심히 일하면 최소 월 300만원을 챙길 수 있다”며 상경을 권유했다.
꼬임에 넘어간 200여명의 학생들은 판매원 신분으로 합숙생활을 시작했다. 교육을 마친 후에는 화장품ㆍ건강식품 등 500만~1000만 원어치의 다단계 판매 물품을 구입했다. “판매원들을 추가로 모집해 물품을 판매하면 16.5%를 수당으로 가져갈 수 있다”는 말에 속아 넘어갔기 때문이다. 일부 피해자들은 제 2 금융권에서 대출을 받아 구매대금을 마련하기도 했다. 정씨가 피해자들로부터 받아낸 금액은 18억여원에 달한다.

경찰이 압수한 화장품, 건강식품 등의 다단계 판매물품

경찰이 압수한 화장품, 건강식품 등의 다단계 판매물품

정씨 등은 판매원들의 이탈을 막기 위해 ‘실시간 보고’ 등의 감시체계를 마련했다. 10명을 한 팀으로 묶어 합숙을 시키고, 방장은 이들의 사생활을 실시간으로 보고했다. 모바일 메신저로 출ㆍ퇴근과 판매 실적도 실시간으로 챙겼다. 특히, 고향에 있는 가족들과 통화할 경우에는 감시자를 붙여 “잘 지낸다, 조만간 내려가겠다” 등의 발언을 강요하기도 했다.

서울 서초경찰서는 20대 청년 200여명을 대상으로 지난해 6월부터 지난 2월까지 불법 다단계 행각을 벌인 혐의(방문판매 등에 관한 법률 위반)로 정모(30)씨 등 3명을 구속하고 36명을 불구속 입건했다고 20일 밝혔다. 김수한 지능범죄수사 1팀장은 “당시 거마조직에서 활동하던 잔당들이 동일한 수법으로 서울 곳곳에서 사기 행각을 벌이고 있다. 수사망을 확대해 이들을 일망타진하겠다”고 말했다.

김민관 기자 kim.minkw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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