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체스 두듯 … 트럼프 이번엔 “김정은 영광스럽게 만날 용의”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1면

대북 선제타격 가능성을 꺼내 들었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이번엔 “그(김정은)와 만나는 게 적절하다면 나는 절대적으로, 영광스럽게 그렇게 할 것”이라고 밝혔다. 1일(현지시간) 워싱턴 이그재미너 인터뷰에서 “최악(군사적 해법)을 대비해야 한다”고 밝힌 지 수시간 뒤 공개된 블룸버그통신과의 인터뷰에서다. 트럼프 대통령은 “대부분의 정치인이라면 결코 이렇게 말하지 않겠지만 나는 적절한 환경에선 그를 만나겠다고 말하는 것이다. 지금 긴급 뉴스(breaking news)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군사옵션 이어 정반대 메시지 #“외교적 해결” 중국 의식한 듯 #헷갈리는 한국, 끌려다닐 우려

지난달 30일 CBS 인터뷰에서 “우리의 수(moves)를 알려선 안 된다. 이건 체스 게임”이라고 밝힌 트럼프 대통령은 말 그대로 양극단을 오가며 예측불허 방식으로 북한을 상대하고 있다. 역대 미 대통령이 북한 지도자를 만난 적은 전무하다. 토머스 허버드 전 주한 미국대사에 따르면 빌 클린턴 대통령 말기에 김정일을 초청했지만 북한이 주저하다 시기를 놓쳤다. 따라서 현직 미국 대통령 입에서 나온 ‘영광스러운 만남’은 극히 파격적이다. 정상회담이 성사되면 그 자체로 북·미 관계는 물론 한반도에 대변화를 가져온다.

백악관은 트럼프의 대화 발언을 조건부라고 해석해 선을 그었다. 숀 스파이서 백악관 대변인은 “지금은 분명히 그런 조건들이 조성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빅터 차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한국석좌도 “직접 대화를 예상하기엔 너무 이르다”고 진단했다.

대북 군사 경고 이어 대화 카드 … NYT “트럼프, 본능 따르고 있다”

그는 “트럼프 대통령의 대화 발언은 미국이 외교적 해결 의지를 보여줘야 한다는 중국의 요청을 반영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럼에도 트럼프의 이번 발언을 두고 북한의 비핵화와 김정은 정권 보장을 맞바꾸는 트럼프식 빅딜 카드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스파이서 대변인은 ‘영광스러운 만남’ 발언에 대해 “김정은은 여전히 국가 원수”라며 “여기엔 외교적인 측면이 있다”고 설명했다. 렉스 틸러슨 국무장관은 지난달 28일 “우리 목표는 (북한의) 정권교체가 아니다”고 명시했다.

관련기사

트럼프 대통령은 그간 북한을 다루는 자신의 스타일이 역대 미 행정부와 전혀 다름을 보여왔다. 조지 W 부시 행정부의 ‘악의 축’ 규정이나 6자회담처럼 일관된 접근이 아니라 협상 성공을 위해 사업 파트너를 들었다 놨다 하는 방식이다. 지독한 변칙 복서 스타일이다. 이번 대화 발언도 그 연장선에 있다고 볼 수 있다. 뉴욕타임스(NYT)는 “트럼프는 기성 접근법이 아닌 본능을 따르고 있다”고 분석했다.

“미국의 6번째 교역파트너이자 민주국가인 한국을 모욕하면서 미국 파괴를 노골적으로 드러낸 북한 지도자를 찬양했다”고 비판한 워싱턴포스트의 지적처럼 트럼프 대통령의 갑작스러운 대화 카드는 그간 대북 강경론을 충실히 따라갔던 동맹국 한국을 당혹스럽게 만들고 있다. 스콧 시먼 유라시아그룹 연구원은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사드) 체계 비용 청구에 이어 직접 대화 발언으로 트럼프 대통령이 두 개의 폭탄 선언을 내놨다”며 “트럼프 정부의 일관된 대북정책에 대한 한국·일본 등 동맹국의 확신을 약화시킨다”고 지적했다. 김용현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는 “북·미 대화 발언이 한국 정부와의 조율 속에 나왔는지 의문”이라며 “미국이 주도하고 중국이 돕는데, 한국은 큰 방향을 모른 채 끌려가는 또 다른 코리아 패싱(passing)”이라고 우려했다. 트럼프의 사업가적 본능과 협상술이 동맹의 신뢰를 시험하고 있다는 것이다.

CNN은 “뒤섞인 메시지는 한반도 대치 상태의 다음 단계가 무엇인지 더욱 흐릿하게 만들었다”고 비판했다. 트럼프 정부의 대북정책이 극단을 오갈수록 긴요해지는 것은 중심을 잡는 한국 정부의 적극적 역할이다.

한편 겅솽(耿爽)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2일 트럼프의 발언에 대해 “최근 미국은 대화와 협상을 통해 북핵 문제를 평화롭게 해결하겠다는 일련의 입장을 밝혔다”며 “한반도 핵 문제의 직접적인 당사국인 미국과 북한이 이른 시일 안에 정치적 수단으로 성의를 다해 긴장을 완화하고 대화를 재개해 한반도 비핵화 실현을 위한 건설적 노력을 다하기 바란다”고 말했다.

워싱턴=채병건 특파원 mfemc@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