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초강경 전략 쫓아가던 한국, 또 코리아 패싱 위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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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제타격 가능성을 꺼내 들었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이번엔 정상회담이라는 정반대의 해법을 내비치며 북한에 신호를 보냈다. 그간 트럼프 대통령의 대북 메시지는 극한의 압박이었다. 1일(현지시간) 워싱턴 이그재미너 인터뷰에서 “최악(군사적 해법)을 대비해야 한다”고 밝힌 게 대표적이다. 하지만 같은 날 수 시간 후 공개된 블룸버그 통신과의 인터뷰는 전혀 다르다. 트럼프 대통령은 “그(김정은)와 만나는 게 적절하다면 나는 절대적으로, 영광스럽게 그렇게 할 것”이라고 밝혔다. “대부분의 정치인이라면 결코 이렇게 말하지 않겠지만 나는 적절한 환경에선 그를 만나겠다고 말하는 것”이라며 “지금 긴급 뉴스(breaking news)를 하고 있다”고 비유했다.

선제타격, 정상회담 뒤섞인 전략 # “영광스럽게”라는 표현도 써가며 # 김정은과의 정상회담 언급 # "대화 발언 한미간 조율됐는지 의문" #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 [사진 위키미디어]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 [사진 위키미디어]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달 30일 CBS 인터뷰에서 “우리의 수(moves)를 알려선 안 된다”며 “이건 체스 게임”이라고 말했다. 말 그대로 트럼프 대통령은 극단적인 무력 동원을 시사하다 돌연 최고의 대화 카드를 내보여 양극단의 가능성을 모두 열어 놓는 예측불허의 방식으로 북한을 상대하고 있다.

역대 미국 대통령이 북한 지도자를 만난 적은 전무하다. 허버드 토머스 전 주한미국대사에 따르면 빌 클린턴 대통령 말기에 김정일을 초청했지만 북한이 주저하다 시기를 놓쳤다. 따라서 현직 미국 대통령 입에서 나온 ‘영광스러운 만남’은 극히 파격적이다. 정상회담이 성사되면 그 자체로 북ㆍ미 관계는 물론 한반도에 대변화를 가져오기 때문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갑작스러운 대화 카드는 그간 초강경 대북 강경론을 충실히 따라갔던 동맹국 한국을 당혹스럽게 만든다. 스콧 시먼 유라시아그룹 연구원은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ㆍ사드) 비용 청구에 이어 직접 대화 발언으로 트럼프 대통령이 두 개의 폭탄선언을 내놨다”며 “트럼프 정부의 일관된 대북 정책에 대한 한국ㆍ일본 등 동맹국의 확신을 약화한다”고 지적했다. 김용현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는 “북ㆍ미 대화 발언이 한국 정부와의 조율 속에 나왔는지 의문”이라며 “미국이 주도하고 중국이 돕는데 한국은 큰 방향을 모른 채 끌려 가는 또 다른 코리아 패싱(passing)”이라고 우려했다.

 백악관은 트럼프의 대화 발언을 조건부라고 해석해 선을 그었다. 숀 스파이서 백악관 대변인은 “북한의 행태와 관련해 조성돼야 하는 많은 조건이 있다”며 “지금은 분명히 그런 조건들이 조성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빅터 차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한국석좌도 “직접 대화를 예상하기엔 너무 이르다”고 진단했다. 그는 “트럼프 대통령의 대화 발언은 미국이 외교적 해결 의지를 보여줘야 한다는 중국의 요청을 반영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지난달 26일 북한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이 북한 군 창건 사상 최대 규모로 열린 군종합동타격시위를 참관하고 있다. [노동신문]

지난달 26일 북한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이 북한 군 창건 사상 최대 규모로 열린 군종합동타격시위를 참관하고 있다. [노동신문]

그럼에도 일각에선 트럼프 대통령이 일괄 타결을 내비친 것 아니냐고 바라본다. 북한 비핵화와 김정은 정권 보장을 맞바꾸는 방식의 트럼프식 빅딜 카드 아니냐는 관측이다. 스파이서 대변인은 ‘영광스러운 만남’ 발언에 대해 “김정은은 여전히 국가 원수”라며 “여기엔 외교적인 측면이 있다”고 설명했다. 렉스 틸러슨 국무장관은 지난달 28일 “우리의 목표는 (북한의) 정권 교체가 아니다”고 명시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그간 북한을 다루는 자신의 스타일이 역대 미 행정부와 전혀 다름을 보여왔다.
‘악의 축’ 규정이나 6자회담 처럼 일관된 접근이 아니라 협상 성공을 위해 사업 파트너를 들었다 놨다 하는 방식이다. 지독한 변칙 복서 스타일이다. 이번 대화 발언도 그 연장선에 있다고 볼 수 있다.  NYT는 “트럼프는 기성 접근법이 아닌 본능을 따르고 있다”고 분석했다.

문제는 트럼프의 사업가적 본능과 협상술이 동맹의 신뢰를 시험하고 있다는 점이다. CNN은 “뒤섞인 메시지는 한반도 대치 상태의 다음 단계가 무엇인지 더욱 흐릿하게 만들었다”고 비판했다. 트럼프 정부의 대북 정책이 극단을 오갈수록 긴요해지는 것은 중심을 잡는 한국 정부의 적극적 역할이다. 김현욱 국립외교원 교수는 “트럼프 정부의 대북 정책은 기존보다 더 큰 채찍과 더 큰 당근”이라며 “미국과 보조를 맞추되, 당근이건 채찍이건 통일이라는 국익을 위한 일관된 전략과 분명한 목표를 갖고 맞춰 가야 한다”고 지적했다. 워싱턴=채병건 특파원 mfemc@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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