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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전 대통령과 닮은 꼴’ 정옥근 전 해참총장, 제3자 뇌물죄 유죄 확정…"묵시적 청탁 인정"

중앙일보

입력

방산업체인 옛 STX 계열사에서 뇌물을 받은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정옥근(64) 전 해군참모총장에게 징역 4년의 실형이 확정됐다.

박 전 대통령의 '제3자 뇌물죄'와 같은 구조 #"제3자 뇌물죄, 부정 청탁 말로 안 했어도 #'묵시적·암묵적 청탁' 인정할 수 있어 유죄" #법조계 "박 전 대통령에 불리한 판례 예상"

대법원 2부(주심 김창석 대법관)는 27일 제3자 뇌물 혐의로 법정 구속된 정 전 총장에 대한 재상고심에서 정 전 참모총장의 상고를 기각해 징역 4년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함께 기소된 장남 정모씨(39)와 정 전 총장의 후배 유모씨(62)에 대한 징역 2년 집행유예 3년의 원심도 그대로 확정했다.

이날 선고는 법리적인 해석에 있어 박근혜 전 대통령·최순실씨ㆍ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제3자 뇌물죄와 맞물려 있어 관심이 컸다.
정 전 총장의 제3자 뇌물 구조가 삼성 측이 낸 미르·K스포츠재단 출연금(204억원)을 둘러싼 박 전 대통령, 최씨의 제3자 뇌물 혐의와 ‘닮은 꼴’이기 때문이다. 지난 2월 서울고법이 정 전 총장의 파기환송심에서 유죄를 선고한 직후 박영수 특별검사팀은 이 판결문을 구해 ‘교본’처럼 정독했을 정도다.

법원이 확정한 사실관계에 따르면, 정 전 총장은 총장 재직 시절인 2008년 9~12월 STX그룹 계열사들이 유도탄 고속함과 차기 호위함 등을 수주할 수 있도록 편의를 제공했다. 이 과정에서 그는 STX그룹 측에 장남이 대주주인 요트 회사를 언급하면서 후원금을 요구했다. STX 측에 ‘앞으로 사업할 생각이 있느냐’며 독촉을 하기도 했다.

STX그룹 계열사들은 정 전 총장의 아들 회사에 7억7000만원의 후원금을 제공했다. 해군이 주관한 요트 행사를 정씨 회사가 대행하고 STX가 뒷돈을 대주는 구조였다. STX 관계자는 검찰 조사에서 “해군참모총장이 지원을 요구하면 방산업체는 당연히 해군 사업 수주와 연결해 생각할 수밖에 없다”는 진술을 했다.

이 사건에서 정 전 총장이 직접 취한 금전적 이익은 없었다. 해군참모총장의 신분으로 해군 방산 사업에 진출하려던 STX에 영향력을 행사해 아들 회사에 혜택이 돌아가게 했다.

하지만 검찰은 이 후원금을 사실상 정 전 총장이 직접 취한 이득으로 보고 직접 뇌물죄를 적용해 2015년 2월 구속 기소했다. STX의 후원금이 들어간 요트 회사의 설립·운영자금을 정 전 총장이 댔고 주식 33%를 아들이 보유하고 있어 경제적 운명을 함께 하는 ‘경제 동일체’라는 판단에서였다.

1심(징역 10년과 벌금 4억원, 추징금 4억4500만원)과 2심(징역 4년)은 유죄를 선고했다.

하지만 대법원은 “후원금을 받은 주체는 요트 회사인데 정 전 총장 부자가 직접 후원금을 받은 것처럼 판단한 것은 잘못”이라며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 보내 다시 심리하라고 했다. 정 전 총장이 직접 후원금을 받은 것이 아니기 때문에 직접 뇌물죄가 아닌 제3자 뇌물죄로 처벌해야 법리상 잘못이 없다는 것이었다.

검찰은 이를 수용해 정 전 총장을 제3자 뇌물수수죄로 다시 기소했고 서울고법은 “기본적인 사실관계가 동일해 검찰의 공소장 변경이 적법하다”며 정 전 청장에게 이전 판결과 동일한 징역 4년형을 선고했다.

이 파기환송심에선 제3자 뇌물죄의 유죄 조건인 ‘뇌물 제공자의 부정한 청탁’이 있었는지가 핵심 쟁점이 됐다. 실제로 STX는 정 전 총장의 장남 요트 회사에 후원금을 건네며“방산업체로 선정되게 해달라”는 등의 구체적인 청탁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재판부는 “해군참모총장의 아들 회사에 후원금을 내면서 사업 선정의 대가를 기대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묵시적·암묵적 청탁’이 있었던 것으로 봐야 한다”고 판단했다.

특검팀은 이재용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를 현안으로 뒀던 삼성 측이 미르·K스포츠재단에 출연금 204억원을 내는 과정이 이와 동일한 구조를 갖췄다고 보고 박 전 대통령 등에게 제3자 뇌물죄를 적용했다. 박 전 대통령을 정 전 참모총장의 위치에 놓고 박 전 대통령과 3번 독대했던 이 부회장이 강덕수 전 STX 회장과 비슷한 상황에 있었다고 본다면 최순실씨는 정 전 참모총장의 아들, 돈을 받은 창구였던 미르·K스포츠 재단은 정 전 참모총장 아들이 대주주였던 요트회사에 대입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한 부장판사 출신 변호사는 “박 전 대통령 사건을 맡은 재판부가 두 사건의 유사성을 얼마나 높게 볼 지가 관건"이라고 말했다. 법조계에선 재판부가 ▶두 재단이 요트 회사와 달리 형식적으로 비영리 법인이라는 점을 어떻게 평가할 지▶대통령과 삼성전자 부회장의 관계를 해군참모총장과 조선업체 회장의 관계처럼 뚜렷한 이해가 얽힌 관계로 파악할 것인지 등도 박 전 대통령의 재판과 관련해 주목할 대목으로 꼽히고 있다.

박 전 대통령에 대한 재판은 다음달 2일로 예정된 첫 공판준비기일을 시작으로 본격화된다.

윤호진 기자 yoongo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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