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분석]딸 죽인 아빠...페이스북 '죽음의 라이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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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흘 새 두 번째 ‘죽음의 라이브’.

태국 21세 남성 11개월 딸 살인 생중계 #페이스북 살인 중계 열흘 새 두 번째

미국에서 길 가던 행인을 살해하는 장면이 페이스북 라이브로 생중계한지 불과 열흘 만에 태국의 젊은 아빠가 어린 딸을 살해하는 장면을 생중계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방콕 포스트 등 태국 현지 언론과 외신에 따르면 워띠산 웡딴(21)이 24일(현지시간) 푸켓 달랑지구의 버려진 호텔에서 생후 11개월 된 딸을 죽이는 장면을 페북 라이브로 생중계한 뒤 자신도 목을 매 숨졌다. 이 영상은 심지어 24시간동안 방치돼 있었던 드러나 페이스북의 부적절한 대처가 다시 한번 도마에 올랐다.

단란했던 아빠와 딸.

단란했던 아빠와 딸.

동갑내기 아내는 남편이 딸을 살해하는 장면을 페이스북에 올렸다는 걸 발견하고 경찰에 신고했다. 경찰은 영상을 토대로 버려진 건물 몇 곳을 수색한 끝에야 호텔 천장에 매달려 있는 아빠와 딸의 시신을 발견했다. 현지 언론에 따르면 남성은 부부싸움을 하고 아내가 집을 나간 후 이 같은 짓을 저질렀다고 한다.

이 남성은 딸의 살해 과정을 페이스북을 통해 생중계했고, 영상은 25일(현지시간) 오후 5시까지 약 24시간 동안 무방비 상태로 열려 있었다. 페이스북은 희생자 가족에게 애도를 표하고 “이 같은 콘텐트는 페이스북에 있어서는 안 되며 이제 삭제됐다”고 밝혔지만 너무 늦은 대처였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첫번째 영상은 11만2000회, 두번째 영상은 25만8000회 이상의 조회수를 기록한 뒤였다. 희미하게 캡처된 영상은 이후에도 SNS에서 떠돌고 있다.

태국 경찰 대변인은 로이터 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살인 현장이 소셜 라이브로 방송된 태국 최초의 사건”이라면서 “최근 미국에서 있었던 사건에 영향 받았을 수 있다”고 말했다.

16일(현지시간)에는 미국 오하이오 주 클리블랜드에서 스티브 스티븐슨이라는 37세 남성이 74세 노인을 총으로 살해하는 장면을 페이스북 라이브로 생중계해 충격을 던진 바 있다. 흰색 포드 자동차를 타고 거리를 돌아다니며 라이브 방송을 하던 그는 피해자에게 다가가 말을 건넨 후 머리에 총격을 가하고 방치한 채 달아났다가 경찰의 추격을 받자 자살했다. 이 남성의 살해 라이브 영상은 사건 발생 3시간이 지나서 삭제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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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스북 CEO 마크 저커버그는 이에 대해 지난주 “페이스북은 불쾌한 콘텐트 게시를 막을 수 있는 노력을 다 할 것이며, 안전한 커뮤니티를 유지하기 위해 해야 할 일이 무척 많다”고 밝힌 바 있다.

이전에도 성폭행이나 동물학대 등의 범죄를 페이스북으로 생중계하는 사례는 빈번했다. 페이스북은 이달 초 소위 ‘리벤지 포르노’라 불리는 부적절한 게시물을 걸러내는 전담팀을 꾸리고, 신고를 받아 삭제된 동영상은 이용자들이 다시 공유하지 못하도록 하는 장치를 도입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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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스북은 '페이스북 라이브' 이용자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이 이어지자 인공지능(AI) 기술을 활용해 자살 의심 행동이 보이면 신고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췄다고 지난달 홍보하기도 했다. 하지만 홍보가 무색하게도 살인 사건 중계 사건이 잇달아 일어나면서 이용자들의 공분을 사고 있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이 두 건의 살인 중계는 페이스북 라이브가 과연 소셜 네트워크의 비전이 될 수 있을지 다시 돌아보게 한다고 꼬집었다. 부적절한 영상을 걸러내는 일을 아직은 미진한 '인공 지능'에만 맡길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마크 저커버그는 최근 열린 연례 개발자회의 F8에서 가짜 뉴스, 양극화된 정치, 생각만으로 타이핑이 되게 하는 기술, 증강현실 등을 통한 페이스북의 비전을 제시했다. 하지만 라이브 스트리밍 관련 범죄에 대한 페이스북의 역할에 대해서는 거의 언급하지 않았다. 페이스북이 긍정적인 역할과 기능만 홍보하는 동안 부작용이나 어두운 측면에 대해서는 무시해 온 것이 '죽음의 라이브'라는 결과를 불러왔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경희 기자 dungl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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