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 좀 보내줘"…억대 '환자 거래' 의사 87명 적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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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퇴부 골절은 50만원, 견골은 40만원, 손가락 절단은 30만~40만원….’
서울 북아현동 A병원 원장 이모(59)씨가 정해 놓았던 ‘환자 거래가’다. 이씨는 서울 주요 종합병원 레지던트 4년차인 의국장들과 이 가격대로 환자를 교환했다. 병원 운영이 어려워지면서 이씨가 낸 ‘고육책’이었다. 종합병원 의국장들 입장에서도 업무적으로나 ‘용돈벌이’로나 나쁠 게 없었다. 그렇게 이들은 6년 전부터 은밀한 거래를 이어왔다.

서울경찰청 지능범죄수사대는 이런 방식으로 2억500만원 상당의 금품을 주고받은 이씨와 해당 병원 영업팀 직원, 종합·대형병원 의사 등 87명을 검거해 55명을 의료법 위반 혐의로 입건했다고 24일 밝혔다. 이씨는 제약사 대표로부터 해당 제약사 의약품을 처방하는 대가로 3회에 걸쳐 2억원의 리베이트를 받은 혐의도 있다.

리베이트 구조. [서울경찰청 지능범죄수사대 제공]

리베이트 구조. [서울경찰청 지능범죄수사대 제공]

경찰에 따르면 이씨는 응급실 환자 유치 영업을 하기 위해 병원 내에 ‘대외협력팀’을 만들었다. 대외협력팀 소속의 영업이사들은 지난 2011년 1월부터 지난해 10월까지 40여 곳의 병원에서 총 1200여 명의 환자를 유치했다. 당일 수술이 어려운 골절 및 수지접합 환자들이 주 대상이었다. 환자 1명당 상태에 따라 가격은 20만원에서 50만원까지 책정됐다.

돈을 받은 종합병원 레지던트 4년차 의국장들은 응급실에서 근무하는 레지던트 1~2년차 의사들로부터 환자 상태에 대한 보고를 받고 수술할 여건이 아니면 A병원으로 환자를 보냈다. 의국장 자리는 보통 6개월에서 1년 정도 한 뒤 후배에게 물려주게 되는데 의국장이 바뀌게 되면 선배 의국장은 후배 의국장에게 A병원 영업 담당자를 소개해 환자 알선을 지속했다. 경찰 관계자는 “의국장들은 이런 행위들이 오랫동안 관행적으로 이뤄져 왔기 때문에 죄의식을 크게 느끼지 않았다”고 말했다.

지능범죄수사대 측은 “종합병원 응급실을 방문한 환자들은 해당 병원에서 당일 수술이 안 되는 경우 다른 병원을 급하게 찾게 되는데 관련 정보가 없다보니 병원 의사 추천에 기댈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경찰은 A병원 같은 사례가 더 있을 것으로 보고 수사를 확대할 방침이다.

홍상지 기자 hongsa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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