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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겨읽기] 고릴라 눈빛에서 … 한 여인이 삶의 빛을 얻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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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고릴라 왕국에서 온 아이
(원제:Song of the Gorilla Nation)
던 프린스-휴즈 지음, 윤상운 옮김, 북폴리오, 296쪽, 9500원

세상이 세운 정상과 비정상의 잣대 앞에서 비틀거리는 사람이 많다. 던 프린스-휴즈(42.미국 웨스턴워싱턴대 교수)는 특히 심했다. '감각에 집착'하고 낯가림이 심하며 의사소통능력이 떨어졌던 그를 학생과 선생님은 미쳤다고 학대했다. 남들과 다르게 산다는 이유로 고통받은 그는 술과 철학을 피난처로 삼았지만 평범한 학교에서 튕겨져 나올 수밖에 없었다.

몇 년에 걸친 노숙자 생활 뒤 그는 댄스 클럽의 댄서가 되었다. 그는 춤을 잘 추고 자신을 표현하는 몸짓의 자유로움이 좋았다. 그에게 춤은 "절대적으로 고독한 활동이었기 때문이다." 많이 헤매고 상처 입은 그는 비로소 기나긴 어둠의 터널을 빠져나올 수 있었다. 어느 날 동물원에 가서 그는 고릴라를 만났다. 한 사람의 삶이 다시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천천히 깨어나기 시작했다. 기지개를 켜고 내가 잊고 있던 영혼을 느끼며 하품을 했다. 나는 두 눈을 열었다. 이제야 진실을 알아차리기 시작했다. 고릴라와 내가 얼마나 닮았는지 알아차렸다. 기쁨을 주체할 수 없어서 크게 소리치고 싶을 때도 있었다. '여기에 점잖은 진짜 사람들이 있어요. 인간이 전부가 아니에요.'"

휴즈는 30대 중반이 되어서야 자신이 왜 평범하게 살지 못했는지 알았다. 세상의 잣대는 그를 자폐인으로 분류한다. 보다 전문적인 의학용어로 말하면 '아스퍼거 증후군'을 앓는 고기능 자폐증 환자다. 이 책은 세상과 유리벽으로 차단돼 있던 한 자폐인이 고릴라 가족을 만나면서 더불어 살아가기까지의 긴 이야기다.

왜 고릴라인가. 고릴라와 인간은 한 조상의 자손이고, 고릴라들은 옛 조상의 생활방식을 지금도 많이 간직하고 있어서다. 주인공이 시애틀 우드랜드 동물원에서 고릴라 가족을 이끄는 가장 '콩고'와 처음 손가락을 맞대고 눈을 들여다보던 때의 묘사는 삶의 비밀 하나를 말해준다.

"그래, 바로 이거야. 이게 바로 사랑하고 사랑받는 거야. 다른 사람을 바라보고 어루만져보고 그의 의미를 느낀다는 게 이런 거야. 무심한 사람들, 죽어가는 사람들 틈에서 힘겹게 헤쳐나가야 하는 이 광활한 공간에서 혼자가 아니라는 느낌이 이런 거야. 이게 바로 살아 있는 거야."

고릴라와 만나고 그들과 지내면서 휴즈는 다시 자신을 발굴했다. 어른으로서, 완전한 인간으로 돌아왔다. 인류학을 연구하는 학자가 됐고, 사랑하는 애인을 만나 가정도 꾸렸다. 세상의 잣대는 아직도 그를 다른 눈으로 바라볼지 모른다. 휴즈 부부는 레즈비언 커플이고 체외 수정으로 아들을 얻었다. 두 사람 모두 대학 교수가 됐지만 아직도 뒤죽박죽 회오리바람처럼 몰아치는 일상사에 불안감이 가시지 않는다.

휴즈는 자신만의 해결책을 찾았다고 썼다. '고릴라로 살아가기'다. 그는 이 책을 읽는 모든 이가 고릴라를 선생님으로 여기기를 희망한다고 말한다. "우리 모두 고릴라의 점잖은 배려와 용감한 책임감과 사랑과 관용을 배우는 학생이 되기를 희망한다. 인간이 고릴라의 가르침을 진정으로 배운다면 '한 사람의 문화'가 모두의 문화를 의미할 것이다."

'나 자신으로 살아가기'를 갈망하는 이들에게 지은이가 부르는 '고릴라 왕국의 노래'는 이렇게 속삭인다. "어찌 나의 노래를 멈출 수 있으리오."

정재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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