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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네 아이가 안 예뻐, 라고 말 못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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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전수진 기자 중앙일보 팀장
전수진P-프로젝트팀 기자

전수진P-프로젝트팀 기자

아이를 낳고는 싶은데 안 낳고 있다. 난임 권하는 사회 탓을 하고 싶지만 어쨌든, 자유민주주의 대한민국에선 모든 게 내 탓이다. 그래서일까, 자격지심이 생겼다. 선후배 동료 여기자들의 아이들 관련 불평(으로 시작해 대개 결국은 자랑으로 끝난다)을 듣는 게 괴로운 거다. 고생을 모르는 바 아니다. 그들 덕에 사랑하는 조국이 24세기에도 유지될 수 있다니, 감사할 따름. 다만, 그들이 때로 은연중에 풍기는 “아이도 없으면서 뭘 알아?” 혹은 “아이가 없으니 야근 정도는 너님이 하셔야죠?” 식 분위기는 사절한다. 갖고 싶은 데 못 갖는 것, 그것도 나름대로 충분히 괴롭다.

또 하나 괴로운 점. 페이스북에 일요일 오후면 쏟아지는 “오늘 우리 공주님(또는 왕자님)과 여기 갔어요” 식의 사진에 ‘좋아요’를 누르는 일이다. 한국인뿐 아니라 미국·영국·일본인 친구들도 이런 포스팅은 꼭 올린다. 근데 말이다. 솔직히 모든 아이가 다 예쁜 건 아니다. 인생은 불공평하다. 성형의학 발전 덕에 후천적 팔자 개선이 가능하다곤 해도 타고난 외모의 행운은 소수의 특권이다. 하지만 페이스북은 온라인 사회생활이다. ‘좋아요’는 기브 앤드 테이크. 주고받는 품앗이다. 정우성이나 수지가 아니고야 남의 포스팅에 ‘좋아요’가 박하면 자신의 포스팅 역시 ‘무(無) 좋아요’ 참사를 맞을 가능성이 크다. 양식 있는 21세기 사회인이라면 가족 관련 포스팅엔 ‘좋아요’를 누르는 건 옵션 아닌 필수다. 하지만 가끔, 정말 못생긴 아이를 두고 “우리 애 예쁘지?”라는 포스팅을 보면 팩트만을 얘기해야 하는 기자의 입장에선 괴롭다. ‘게시물 숨기기’를 누르면 된다지만 그러면 또 왠지 죄책감이 든다.

이쯤 되면 존경하는 홍준표 자유한국당 후보께서 “여자가 응당 할 일을 저버렸다”고 하실지 모르겠지만 글쎄, 그럴 시간에 눈썹 문신부터 다시 하셨으면 좋겠다는 작은 소망이 있다. 최소한의 미의식을 가진 보통 여성 국민으로서의 고언(苦言)이다. 아, 설거지와 청소는 직접 하니 걱정 마시길. 사실, 기호 1번부터 5번 후보들의 저출산대책도 글쎄, 요란은 한데 마음에 팍 와닿지 않는다. 지난 19일 TV토론에서도 저출산대책은 찬밥 신세였다. 누구 말에 빗대면 “아이를 낳지 않아 본 사람은 저출산 관련 대책에 대해 말하지 말라”일 테니 입이나 다물고 있어야 할까. 아니면 저출산대책도 조교에게 대신 제출하라고 해야 할까. 이번 대선에서만큼은 공약(公約)이 공약(空約)으로 끝나지 않길 바랄 뿐이다. (아, 노파심에 덧붙인다. 내 페이스북 친구들의 애들은 다 예쁘다. 진심이다.)

전수진 P-프로젝트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