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과 정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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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자공이 나라를 다스리는데 가장 중요한 것을 물었을 때 공자는 병과 식과 신을 들었다.
그 셋 중의 하나를 빼도 되는 것을 물었을 때 공자는 군사(병)를 들었다. 다음에 없어도 좋은 것은 식량(경제)이지만 믿음(신)만은 절대로 없어서는 안 된다고 대답했다.
역사상 군대의 필요를 가장 절실히 인정한 사람도 공자이지만 또 나라의 영구한 평화와 안정을 위해서 그것을 국민의 신뢰나 경제보다 못하다고 평가한 것도 공자였다.
그런 전통이 동서양을 통해 일관되었던 건 사실이다.
비록 「칭기즈칸」이나 「알렉산더」대왕이 군대로 영토를 넓힌 것은 사실이지만 군대를 고상한 가치로 인정한 건 아니었다.
19세기의「오귀스트·콩트」나「허버트·스펜서」같은 사회학자까지도 군대사회를 산업사회보다 도덕적으로 열등한 생활양식으로 규정하고있다.
다만 군사학의 아버지라는 「클라우제비츠」만은 「전쟁은 정치의 연속」이라고 하면서 그 불가분성을 강조했다.
그러나 군대가 정치의 최전방에 진출한 것은 근대국가 발생후의 일이다.
특히 2차대전후 식민지체제를 청산한 신생국들에서 군부는 정치에서 지배적 역할을 담당했다. 베트남 등 아시아·아프리카지역에서 8개국, 아르헨티나· 칠레 등 남미에서 20여 개국이나 됐다.
『군과 정치』란 책의 편저자인 스탠퍼드대학의 「존·존슨」교수는 신생국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군부를 세 가지로 구분했다.
①전통적 정치질서를 붕괴시킨 혁명세력②공산화의 위기에서 구한 안정세력③사회개혁과 행정·공업기술에 기여한 사회개혁세력.
그러나 군대의 정치개입은 그 모든 나라에서 거의 예외 없이 군사력에 기반을 둔 독재의 쓰라린 경험을 남겼다.
최근 제5공화국성립과정에서 정치에도 관여했던 허화평씨가 외지에「군의 정치개입은 정치인의 잘못 탓」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정치인의 잘못도 부정하긴 어렵지만 「군이 정치사회발전에 한몫 하겠다」는 주장은 신생후진국도 아닌 이 나라에선 아주 위험한 생각이다. 국민의 민주화 열망을 너무 가볍게 보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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