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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지그레이의 단톡방 보면 대선 결과 보인다

중앙일보

입력

2년 전 처음으로 스마트폰을 장만한 조모(73ㆍ충북 청주시)씨는 요즘 동창 단톡방(단체 카톡방)을 들여다보는 시간이 부쩍 늘었다. 하루 서너 차례 돌곤 하는 대선 후보 관련 메시지를 읽고 공감되는 얘기는 다른 단톡방으로 퍼나른다. 보통 ‘A 후보를 찍어선 안 되는 7가지 이유’ 또는 ‘B 후보의 심각한 안보 인식’ 같은 제목의 동영상 또는 블로그 글이다.

조 씨는 “사는 지역과 나이가 비슷해서인지 방송이나 신문 뉴스보다 친구들이 보내오는 글이 더 와 닿는 경우가 많다”며 “이런 메시지가 한번 돌 때마다 ‘누굴 찍는 게 좋겠다’는 등의 대화가 오가 하루에도 몇번씩 정치 얘기를 하게 된다”고 말했다.


퇴직 공무원인 임 모(69ㆍ울산광역시) 씨는 최근 지지 후보를 결정했다. 동창ㆍ친척ㆍ동호회 모임 등으로 네이버 밴드를 활용하는 그는 “C 후보를 찍다간 자칫 A 후보가 될지도 모르니 B 후보를 찍자고 친구들을 설득하고 있다”며 “카톡이나 밴드에 오가는 글을 보니 이 방향이 맞는다는 확신이 들었다”고 말했다.
그의 단톡방은 지난 2월 가장 바빴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 선고를 앞두고 태극기 집회가 하루가 멀다고 열리던 때다. 임 씨는 “마침 서울에 올라올 일이 있을 때 카톡 정보를 보고 집회에 참여하기도 했다”며 “겨우 3년 전에 스마트폰을 장만했는데 이렇게 열심히 쓰게 될지 몰랐다”고 말했다.

이번 대선 최대 변수로 떠오른 노년층 SNS 여론 #지난 대선 때 10% 안되던 노년 스마트폰 보유율 #최근 60대 63%, 70세 이상 26%로 치솟아 #폐쇄적 단톡방 중심으로 "누구 찍자" 의견 활발 #가짜 뉴스에 속거나 세대벽 장벽 높아질 우려도

스마트폰 사용에 적극적인 ‘엄지그레이(엄지족과 노년층을 뜻하는 그레이의 합성어)’가 이번 대선의 핵심 변수로 떠오르고 있다. 지난 대선만 해도 열 명에 한 명꼴도 안되던 노년층의 스마트폰 보유율이 최근 급격히 치솟으면서 이들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여론전에 참여하기 시작한 것이다. 특히 흔들리는 보수 노년층의 표심에 대선의 향방이 달려있다는 분석이 나오면서 노년층의 SNS 여론에 대한 정치권의 관심은 더욱 뜨겁다.

지난 대선에 6070 세대는 SNS 여론이라는 걸 제대로 형성하지 못했다. 정보통신정책연구원에 따르면 지난 대선이 실시된 2012년 60대의 스마트폰 보유율은 9%, 70세 이상의 보유율은 1.5%에 불과했다. 열에 한 명도 스마트폰이 없으니 또래 간 SNS 문화가 형성될 수 없었다. 하지만 지난해엔 60대의 셋 중 두 명(63%), 70세 이상의 넷 중 한 명(26.3%)이 스마트폰을 보유한 것으로 나올 정도로 이 수치는 무섭게 치솟았다. 노년층의 스마트폰 보유율이 급속히 늘어나며 이 세대는 스마트폰 시장의 큰손으로 떠오를 정도다. 시장조사기관 아틀라스리서치에 따르면 4월 첫째주 전국서 가장 많이 팔린 스마트폰은 삼성전자의 갤럭시와이드. 일명 ‘효도 스마트폰’으로 불리는 대화면 보급형 모델이다.

“휴대전화는 통화만 되면 된다”던 이 세대는 한번 스마트폰을 잡기 시작하자 돌변했다. 스마트폰을 통해 인터넷에서 정보를 찾고, 카카오톡ㆍ네이버밴드 등의 SNS로 의견을 나누기 시작한 것이다. 미래창조과학부의 ‘2016 인터넷이용실태조사’에 따르면 2014년만 해도 32.8%에 그쳤던 60대 이상의 인터넷 이용률은 지난해 51.4%로 올랐다. 같은 자료에선 65세 이상 고령층의 61.4%가 카카오톡 같은 인스턴트 메신저를 쓰는 것으로 드러났다.

특히 노년층의 단톡방(단체 카톡방) 활동은 젊은 세대의 SNS 활동보다 훨씬 대선에 큰 영향을 끼칠 거란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보통 단톡방을 친목을 도모하거나 업무 연락을 주고받기 위해 쓰는 청년층과 달리 노년층은 단톡방을 통해 정치적 견해를 자주 주고받는다는 것이다. 트위터ㆍ페이스북과 비교해 폐쇄적이라는 점, 정보 확산 속도는 더 빠르다는 점에서 단톡방은 노년층 여론 확산의 강력한 무기가 됐다.
장우영 대구카톨릭대 정치학과 교수는 “태극기 집회 참가자 대부분이 단톡방을 통해 정보를 나누고 집회 나갈 마음을 먹었다고들 한다”며 “이번 선거에서도 이들이 단톡방을 통해 전략적ㆍ조직적 행동에 나설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했다.

보수정당에서 강력한 후보를 내지 못한 이번 선거이기에 SNS를 통한 노년층의 응집력이 더욱 강해질 거란 분석도 나왔다. 윤종빈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자칫하면 자신의 표가 사표(死票)가 될 수 있다는 두려움 때문에 최근 노년층들이 더더욱 활발하게 정치 여론 조성에 나서는 걸로 보인다”며 “각 캠프에서 이런 점을 파악하고 SNS 여론 대응에 더 총력을 기울이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고 말했다.

한편에선 노년층의 SNS 활동이 가짜 뉴스의 무분별한 확산이나 세대 간 여론 장벽을 공고히 하는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윤 교수는 “최근 이정미 재판관의 남편이 통합진보당원이라는 등의 가짜 뉴스가 주로 노년층의 SNS를 통해 퍼지기도 했다”며 “SNS 문화에 아직 익숙하지 못한 세대라 가짜 뉴스나 선동적 콘텐트에 쉽게 휘둘릴 수 있다는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임미진 기자 mijin@joongang.co.kr

가파르게   증가하는 노년층 스마트폰 보유율 (단위: %)

 

2012년

2013년

2014년

2015년

2016년

10대

56

85.5

91.6

90.6

93.2

20대

89.8

97

99.3

99.1

99.6

30대 

71.5

92.7

97.2

98.9

99.5

40대

50.5

83.2

92.9

96

98.1

50대

25.1

56

72.1

82.6

90.6

60대

9

22.9

36.5

51.4

63

70세 이상

1.5

6.4

13.9

19.5

26.3

자료: 정보통신정책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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