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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금한령 무풍지대 '감천문화마을'...동남아 관광객 몰려온다

중앙일보

입력

부산 사하구 감천2동에 위치한 '감천문화마을' 전경. 이은지 기자

부산 사하구 감천2동에 위치한 '감천문화마을' 전경. 이은지 기자

“벽돌집들이 기차처럼 다닥다닥 붙어 있는 모습이 신기하네요. 벽돌이 알록달록해서 보기에도 예뻐요.”  
지난 5일 오전 11시 부산 사하구 감천2동 감천문화마을에서 만난 대만인 황아휴(36)는 들떠 있었다. 친구 6명과 함께 6박 7일로 한국을 찾은 그는 “인터넷 검색으로 이곳을 알게 됐다”며 “맛있는 비빔밥을 먹을 수 있고, 어린왕자 조형물 옆에서 사진을 찍을 수 있다고 해 첫 관광지로 이곳을 택했다”고 말했다.

올해 1월~3월 관광객 49만명으로 전년 같은기간 대비 11% 증가 #대만, 홍콩, 말레이시아 등 동남아 관광객 삼삼오오 짝을 지어 방문 #부산 사하구청 도시재생사업과 부산관광공사의 마케팅 전략 성공 영향

지난 3월부터 감천문화마을에는 중국인 단체관광객(유커)이 완전히 사라졌다. 그러나 이곳을 찾는 외국인 관광객은 오히려 늘었다. 부산시 사하구 창조도시기획단에 따르면 올해 1월부터 3월까지 감천문화마을을 찾은 관광객은 49만 명으로 전년 같은 기간(44만 명)보다 11% 증가했다. 이들의 60%가량은 외국인 관광객이다. 특히 올해는 외국인 관광객 증가세가 뚜렷하다. 지난해 관광객 186만명 중 외국인은 40% 수준이었다. 중국인 관광객은 52여만 명으로 외국인 관광객의 70%를 차지했다.

지난 5일 감천문화마을을 찾은 태국 관광객들이 마을지도를 보고 있다. 이은지 기자

지난 5일 감천문화마을을 찾은 태국 관광객들이 마을지도를 보고 있다. 이은지 기자

유커의 빈자리는 대만·홍콩·싱가포르·말레이시아 등 동남아시아 관광객이 채우고 있다. 올해 1월~3월 감천문화마을에서 판매된 4개국 언어로 된 지도 판매량을 보면 중국어 지도가 2만5837장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4205장)보다 5배로 늘었다. 감천문화마을은 주민 수익사업으로 마을 입구에서 2000원에 지도를 판매하고 있다. 정승교 사하구 창조전략 계장은 “올해 1월부터 유커가 점점 줄다가 3월에는 아예 찾아볼 수 없는데도 중국어 지도 판매가 늘었다는 건 중화권 관광객이 늘었다는 방증”이라며 “대만·홍콩 등 동남아시아 관광객이 중국어 지도를 들고 삼삼오오 모여 감천문화마을을 돌아다니는 모습이 눈에 띄게 늘었다”고 말했다.

이슬람 복장인 ‘차도르’를 머리에 두른 말레이시아인 카릴라(Khalilah·38)는 “구글에서 이곳을 부산 관광지로 추천해서 오게 됐다”며 “한국이 어떤 문화와 역사를 가졌는지 궁금했는데 감천문화마을에 고스란히 보존돼 있어 좋았다”며 한 번 더 오고 싶다는 뜻을 전했다. 일본 관광객도 지난해보다 2배 가량 늘었다. 딸·손자들과 이곳을 찾은 타다다까코(69)는 “냉랭한 한·일 관계를 크게 개의치 않는다” 했다.

감천문화마을이 중국 ‘금한령’의 무풍지대로 떠오른 데에는 부산 사하구와 부산관광공사의 공이 컸다. 사하구는 도시재생사업으로 감천문화마을을 관광 콘텐트가 있는 마을로 탈바꿈시켰다. 부산관광공사는 지난해 7월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ㆍ사드)의 한반도 배치가 최종 결정되자마자 동남아로 마케팅을 강화했다.

부산관광공사는 2016년 동남아시아 여행사 대상 팸투어를 상반기 5회에서 하반기 8회로 늘렸다. 지난해 해외 박람회 참가는 2번에 지나지 않았지만 올해는 이미 3번 참여했다. 또 2016년 2월 필리핀 마닐라에서 열린 해외 박람회 부스는 544개 엿지만 지난 3월 말레이시아에서 열린 국제관광전에는 1300개 부스를 차렸다. 지난해 홍콩 관광객을 타깃으로 1번 진행했던 이벤트를 올해에는 말레이시아 관광객으로 타깃을 바꿔 두 번 진행했다. 입소문이 나면서 지난해 미국 NBC, 아리랑 TV, 대만 코미디프로 등 해외 언론이 감천문화마을을 소개했다.

지난 5일 감천문화마을을 찾은 외국인 관광객들이 어린왕자 조형물 옆에서 사진을 찍고 있다. 이은지 기자

지난 5일 감천문화마을을 찾은 외국인 관광객들이 어린왕자 조형물 옆에서 사진을 찍고 있다. 이은지 기자

 한국전쟁 직후 피난민이 일군 감천문화마을은 부산에서 손꼽히는 낙후지역이었다. 2009년 4000여 가구 중 10%가 폐가로 전락하자 부산 사하구가 도시재생사업에 돌입했다. 원형은 보존하되 폐가와 골목 곳곳에 예술 작품을 설치하고 벽화를 그려넣었다. 승효상·조성룡 등 유명 건축가의 재능기부를 받아 폐가를 갤러리로 리모델링했다.
감천문화마을 주민협의회 전순선 부회장은 “못살던 시절 옆집에서 남은 흰색 페인트를 받아 섞어쓰던 것이 파스텔톤의 가옥을 탄생시켰고, 뒷집에도 해가 비치도록 산자락을 따라 층층이 집이 들어선 게 외국인에게 신기하게 보이는 것 같다”며 “나눔과 소통의 미덕을 남기고 예술작품이 가미되면서 관광지로 떠올랐다”고 말했다.

지도 판매와 주민협의회가 운영하는 9개 마을기업이 거둔 수익은 주민 복지사업에 쓰인다. 주민들의 삶이 나아지자 관광객들을 친절하게 응대하는 선순환 구조가 마련됐다. 정 계장은 “주민들이 만족해야만 지속적으로 발전하는 마을이 될 수 있다”며 “올해에는 35억원을 투입해 도시가스공급, 골목정비, 하수관 개선 사업 등을 진행할 것”이라고 말했다. 부산=이은지 기자 lee.eunji2@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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