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화평씨 외지에 한국내 군의 역할 기고|군의 정치개입은 정치적 잘못 탓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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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다음은 제5공화국 초기 청와대 정무제1수석비서관을 지낸 허화평씨(현 미헤리티지재단객원 연구원)가 파 이스턴 이커노믹 리뷰지 최근호에 기고한 한국정치에 있어서의 군의 역할 이라는 글을 요약한 것이다 【편집자주】 최근의 정치 혼란기를 맞아 여러 재야세력들은 현정부를 군사독재로 비난하고 있다 이들 세력은 군부를 일괄적으로 공격함에 있어서 지난 26년 동안 군을 필연적으로 정치에 끌어들이게 한 정치적 현실과 역사적 배경을 간과하고 있다.
이 배경을 이해하지 못하면 현재 일어나고 있는 반군감정은 군의 사기를 저하시켜 국가의 안보이익을 위협받게 할 것이다.
정부의 민간 우선체제가 미흡하다고 평가하는 재야 비판자들은 군의 정치개입을 대다수 국민들이 받아들이고 있고 한국의 경제·사회 발전을 육성· 유지하고 있는 것이 소수 장성들만이 아니라는 점을 인정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이들 비판자들은 군의 정치개입이 평화롭고 질서있는 정치발전을 민간 정치인들이 실현하지 못한데서 비롯됐다는 핵심적 측면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극단적 학생들과 반체제 기독교도들은 또 해방이후 40년 동안 군이 북한의 침략을 격퇴하고 거듭되는 정치·사회적 불안속에서 기본 헌법질서를 지키며 한국이 자유시장제도하의 번영을 기할 수 있도록 안보를 유지해온 역할을 제대로 평가해 주지 못하고 있다.
재야 비평가들이 학생·대기업 및 민간 관료체제가 한국사회를 자유롭게 유지하는 세력기반의 일부임을 받아들인다면 마찬가지로 현 제도의 안정세력으로서의 군의 역할을 인정해야 된다.
문 앞에 생존을 위협하는 적대세력이 있고 국민총생산의 30%를 국방에 쓰고있는 나라가 정치과정과 국가건설과정에 있어서 군의 발언권을 부인하는 것은 불합리하고 비현실적이다.
군이 정부의 정책결정에 독점적 통어를 행사하고 있다는 비난은 정부의 민군 연합체 내부의 세력균형 변화를 감안하지 않은 것이다.
초기에 강했던 군의 발언권은 안정이 회복되고 권력이 관료들에게 넘어가면서 쇠퇴했다.
한국 군부는 학생시위로 이승만 정권이 붕괴된 60년 4월 정치에 개입하기 시작했다. 독재적인 이승만은 그의 인기없는 정권을 유지하기 위해 일제에 의해 훈련된 경찰에 의존했으나 학생들은 그의 4선을 위한 부정선거에 항의해 다시 일어났다.
현재 군부에 대해 비판하는 사람들은 군부의 첫 정치개입이 이처럼·민주세력의 편에 서서 이루어졌다는 사실을 쉽사리 무시해버리고 있다.
61년 5·l6혁명은 법과 질서를 회복시켰고 국민간의 단합과 규율, 그리고 관료주의의 효율성을 가져왔으며 행정부안에 민군간의 협력을 이룩해냈다. 또 최초의 종합적 경제개발계획의 추진으로 수출부문이 주도하는 경제성장의 기반을 닦았다. 또 어떤 민간지도자보다 훨씬 낫게 박정희 대통령은 한 국민의 힘을 재조직, 산업화와 경제도약의 발판을 만들었다.
박대통령은 그러나 유신의 단행을 통해 이승만 정권의 장기집권 전철을 되풀이했고 그자신의 입적까지 손상시켰다. 만일 박대통령이 이 같은 치명적 유혹에 말리지 않았더라면, 그래서 정치발전의 고리를 약화시키지 않았더라면 그가 일으킨 쿠데타는 또 다른 군부개입으로 귀결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유신은 박대통령의 「군인개혁자」 이미지를 완전히 파괴시킨 사건이 되었다.
전두환 대통령은 박대통령과 마찬가지로 집권초기에는 「군인개혁자」의 역할을 잘 수행했다. 전대통령의 집권 7년이 지난 현재 그는 한국 역사상 처음 자발적으로 평화적 정권교체로 물러나는 대통령이 될 것 같다. 그러나 개혁을 주도한 군인들은 지금까지의 실적이 성공과 실패를 다같이 보이고 있음을 시인한다.
소득분배 개선과 물가안정이 성과라면 끊임없는 학생 시위사태와 일부에서 나타난 변혁에 대한 저항 등이 개혁의 강조점을 희석시켰다. 그 결과로 개혁세력이 처음 생각했던 기본적 사회· 정치적 변혁목표는 약화되고 개혁목표는 단순한 민주화구호로 바뀌어졌다.
현정부는 장기적인 영향을 미칠 여러 이슈들에 결연한 행동을 취하지 못했고 민군연합체는 기우퉁거리면서 임기응변을 일삼았다.
또 민간 관료의 영향력이 커지면서 개혁계획이 밀려났다. 이렇게 하여 정치계획을 수립하던 군부 엘리트의 역할이 뒤바뀌어 민간 관료가 만든 정책을 군부 엘리트가 수행하기에 이르렀다.
전두환 대통령의 군인개혁개척 이미지도 이와 함께 무너졌다.
군부가 이뤄 낸 이 같은 성공과 실패의 뒤섞인 이미지에도 불구하고 군부엘리트는 그들의 책임을 포기할 수 없으며 전적으로 민간의 손에 불확실한 한국의 정치장래를 맡겨둘 수 없다. 점증하는 급진좌경 학생들과 노동자들이 한국체제를 전면 부정하는 현재의 상황에서 더욱 그렇다.
이 같은 정치체제의 급진적 변화를 볼 때 한국의 안보는 더욱 심각한 과제로 대두되고 있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볼 때 한국의 다원적 정치사회발전을 위해 군부엘리트는 정치권밖에 머물러 있을 수 없으며 그 한몫을 수행해야 한다. 어쨌든 그들은 국가건설을 이뤄내려는 한국인의 열망에 주요한 담당자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군부가 정치에 개입하느냐의 여부가 문제가 아니라 군의 역할이 보다 구체적 목적을 위해 어떻게 잘 규정되느냐가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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