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실험 대신 핵능력 과시로 미국에 맞선 김정은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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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7호 01면

김일성 생일 105주년 행사서 신형 ICBM 무력시위, 시진핑 체면 세워주고 트럼프와 대화 노린 듯

김일성 생일 105주년을 맞아 15일 평양 김일성광장에서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열병식에서 고체연료 엔진을 사용하는 것으로 추정되는 신형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이 선보였다. [AP=뉴시스]

김일성 생일 105주년을 맞아 15일 평양 김일성광장에서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열병식에서 고체연료 엔진을 사용하는 것으로 추정되는 신형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이 선보였다. [AP=뉴시스]

열병식에서는 또 다른 신형 ICBM(사진 위)과 2012년 처음 선보였던 KN-08의 개량형(사진 아래)도 공개됐다. [AP=뉴시스]

열병식에서는 또 다른 신형 ICBM(사진 위)과 2012년 처음 선보였던 KN-08의 개량형(사진 아래)도 공개됐다. [AP=뉴시스]

우려했던 제6차 핵실험은 없었다.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의 육성연설도 없었다. 대신에 대규모 열병식이 있었다. 한 달 넘게 전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키며 위기설을 증폭시켰던 평양의 4월 15일은 그렇게 넘어갔다.

ICBM 3종·SLBM ‘북극성’ #주요 전략무기들 총동원 #최용해 “핵타격전으로 대응” #25일 인민군 창건일이 고비

한반도 위기설은 북한이 김일성 생일(태양절) 105주년을 맞는 15일에 즈음해 6차 핵실험을 할 것이란 관측이 제기되면서 고조됐다. 게다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거침없는 말과 함께 미군이 시리아 공군기지에 대한 미사일 공습을 감행하면서 선제타격 우려가 확산됐다. 북한은 전날인 14일에도 “오산과 군산·평택 등 미군기지들과 청와대를 포함한 악의 본거지들은 단 몇 분이면 초토화된다”(인민군 총참모부 대변인 성명)며 위기감을 한껏 고조시켰다.

그러나 북한은 군사도발 대신 핵 능력 과시로 선회했다. 외국 기자들이 초대된 가운데 열린 열병식에선 주요 전략무기들이 총동원됐다.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북극성’과 중장거리 전략탄도미사일(IRBM) ‘북극성 2형’ 등이 이동식 발사차량에 실린 채 모습을 드러냈다. 북한은 2012년 태양절 열병식 때 선보였던 KN-08의 개량형과 신형 ICBM으로 추정되는 미사일 2종류를 처음으로 공개했다.

이로써 북한이 보유한 ‘ICBM 3종 세트’가 모습을 드러냈다. 신형 ICBM은 원통형 발사관에 담긴 채 트레일러에 실려 나왔는데 실제 미사일 부분은 식별되지 않았다. 사거리가 1만㎞를 넘는 ICBM은 미국 본토를 직접 겨냥한 무기다. 전문가들 사이에선 “미국을 겨냥, 선제타격에 굴복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드러내려 한 것”이란 관측이 나왔다.

신인균 자주국방네트워크 대표는 “신형 미사일은 고체연료 엔진을 이용한 ICBM일 가능성이 크다”고 설명했다. 고체연료 탄도미사일은 발사에 5~10분 정도 걸려 위성을 통한 사전 포착을 전제로 한 선제타격 개념인 킬체인을 무력화할 수 있다. 신 대표는 “북한이 고체연료 엔진을 실전에 배치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줌으로써 핵 공격 능력을 과시하려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날 열병식에선 이례적으로 최용해 노동당 중앙위원회 부위원장이 직접 트럼프 행정부를 거론하며 비난을 퍼부었다. 그는 축하 연설에서 “(미국이) 광란적인 핵전쟁 도발 책동을 벌이면서 일촉즉발의 위험한 전쟁 국면을 조성하고 있다”며 “(북한은) 평화를 사랑하지만 결코 전쟁을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이어 “미국이 무모한 도발을 걸어온다면 전면 전쟁에는 전면 전쟁으로, 핵전쟁에는 우리 식의 핵 타격전으로 대응할 것”이라고 공언했다.

 북한은 그동안 시험 발사했던 SLBM인 ‘북극성’도 보여 줬다. SLBM이 열병식에 등장한 것은 처음이다. SLBM은 잠수함에 실어 수중에서 은밀히 쏠 수 있어 킬체인이나 한국형 미사일방어(KAMD) 체계로 막기 어렵다. 이날 열병식엔 처음으로 북한 화생방부대도 등장했다.

김정은의 동생 김여정 노동당 선전선동부 부부장(왼쪽)이 열병식 도중 김정은 옆에서 커다란 앨범형 책자를 펼쳐 놓고 있다. [조선중앙TV 캡처]

김정은의 동생 김여정 노동당 선전선동부 부부장(왼쪽)이 열병식 도중 김정은 옆에서 커다란 앨범형 책자를 펼쳐 놓고 있다. [조선중앙TV 캡처]

 북한이 핵실험 대신 열병식으로 선회한 것은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의 체면을 세워 주면서 트럼프 대통령과 대화를 시도하려는 의도가 담긴 것으로 풀이된다. 중국은 김일성 생일 105주년을 맞아 지난 12일 주중 북한대사관이 준비한 연회에 고위 인사를 대거 보냈다. 왕자루이(王家瑞) 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정협) 부주석, 왕야쥔(王亞軍) 중국 공산당 대외연락부 부장조리, 쿵쉬안유(孔鉉佑) 중국 외교부 부장조리(차관보급) 등 북한과 인연이 깊은 사람들이 참석했다. 왕 부주석은 김정일 국방위원장 시절 북·중 외교를 맡았던 인사다. 그는 “김일성 주석은 중·조(북한) 친선을 마련한 사람으로 두 나라 인민 속에 영생한다”며 김일성을 치켜세웠다. 선대부터 이어져 온 북한과 중국의 친선 관계를 부각하면서 북한을 설득하려 한 것으로 보인다. 전현준 동북아평화협력원장은 “중국이 어떤 식으로든지 북한의 핵실험을 설득·회유했을 것이며 이에 북한은 중국에 미국과의 대화를 주선해 달라고 요구할 가능성이 크다”고 관측했다.

 하지만 도발 위험이 완전 해소된 건 아니다. 올해 85주년을 맞는 인민군 창건일(25일)이 또 한 번의 고비가 될 수 있다는 관측이다. 전 원장은 “김정은은 중국의 태도를 지켜보면서 북·미 대화가 이뤄지지 않을 경우 6차 핵실험을 감행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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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수석 통일문화연구소 연구위원

ko.soosu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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