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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션피플들의 아지트 된 간장게장 집, 어디?

중앙일보

입력

서울 강남구청역 사거리 인근 골목, 치킨집과 동네 식당, 프렌차이즈 커피숍들이 늘어선 평범한 거리에는 유난히 존재감을 발하는 식당이 있다. 전면이 통 창으로 된 외관에 현대적인 인테리어가 훤히 보이는 까닭이다. 간판에는 깔끔한 영문 폰트로 ‘GEBANGSIKDANG'이라고 쓰여 있다. 카페인가 싶어 들여다보니 안쪽에 있는 사람들이 열심히 밥을 먹고 있다. 여기, 대체 뭐하는 집일까.

현대적인 인테리어의 게방식당 외관. 도통 간장 게장을 파는 집이라고는 여겨지지 않는다. [사진 게방식당]

현대적인 인테리어의 게방식당 외관. 도통 간장 게장을 파는 집이라고는 여겨지지 않는다. [사진 게방식당]

“지나가다가 너무 궁금해서 들어와 봤다는 사람들이 꽤 많아요.” 게방식당의 주인, 방건혁(39)씨의 말이다. 간장 게장의 ‘게’에 주인장의 성 ‘방’을 합쳐 게방식당이라고 이름을 지은 이곳은 의외로 간장게장을 파는 집이다.
이런 의외성은 가게 안으로 들어서면 더하다. 일단 전체적으로 하얗다. 스테인리스로 된 군더더기 없는 디자인의 큰 테이블이 가운데, 양 벽을 둘러싼 바(bar)형태의 테이블이 약 20석 가량 마련되어 있다. 요즘 유행하는 절제된 미니멀(minimal) 인테리어다. 큰 테이블 바로 위에는 큼지막한 조명이 달려있다. 자세히 보니 영국 디자이너 톰딕슨의 크롬 소재 팬던트 조명이다. 벽에는 덴마크 가구 브랜드 몬타나의 심플한 선반이 달려 있다. 뿐인가, 각 테이블 위에는 프랑스 향초 브랜드 씨흐투르동이 놓여있다.

내부는 카페라고 해도 좋을만큼 감각적이다. [사진 게방식당]

내부는 카페라고 해도 좋을만큼 감각적이다. [사진 게방식당]

흔히 간장게장은 한식을 대표하는 구수한 이미지의 음식이다. 서울의 내로라하는 간장게장 집들의 비주얼을 떠올려보면 확실히 게방 식당은 튄다. 아니나 다를까, 게방식당의 방 대표는 삼성물산 패션 마케터 출신이다. 회사에 다니던 3년 전부터 ‘뻔하지 않은 간장 게장 집’을 머릿속으로 구상하고, 2016년 12월에 회사를 그만둔 뒤 이듬해 1월 문을 열었다.

방건혁 대표 [사진 게방식당]

방건혁 대표 [사진 게방식당]

오픈한지 4개월 된 신생 식당임에도 게방식당은 소위 ‘핫’하다. 다름 아닌 소셜 네트워크 채널 ‘인스타그램’ 덕이다. 해시태그(#)를 넣고 검색해보니 벌써 900여개가 넘는 게시물이 뜬다. 유기그릇에 담긴 먹음직스러운 간장게장과 함께 깔끔한 공간 사진이 유난히 많이 검색된다. 맛에 대한 평가뿐 아니라 공간에 대한 언급도 많다. 어딜 가든 사진부터 찍어 SNS에 올리는 시대에 게방식당 같은 감각적인 공간은 일단 점수를 받는다.

작은 소품 하나도 까다롭게 골랐다. 사진은 천정에 달린 시계.[사진 게방식당]

작은 소품 하나도 까다롭게 골랐다. 사진은 천정에 달린 시계.[사진 게방식당]

방 대표는 “패션 마케팅을 하면서 인스타그램의 영향력에 대해 실감했다”며 “식당을 낼 때 인스타그램에 언급될만한 요소들을 일부러 배치했다”고 밝혔다. 인테리어 못지않게 조명에 신경을 쓴 이유가 이 때문이다. 음식 사진과 셀피(selfie·셀카)가 잘 나올 수 있도록 조도를 맞췄다. 가게 한쪽의 조명은 일부로 흰 벽을 향하도록 했다. 흰 벽을 맞고 나오는 조명 아래서 사진을 찍으면 반사판 효과를 내 사진이 더 잘 나온다는 점을 계산한 것이다. 소품이나 식기 하나하나에도 신경 썼다. 음식은 전부 깔끔한 식기에 담겨 모던한 디자인의 나무 트레이 위에 나온다. 이렇게 해 놓고 보니 시키지 않아도 사람들이 알아서 카메라를 들고 사진을 찍는다. 저절로 홍보 효과를 누리는 셈이다.

사진이 잘 나오는 조도를 맞춘 조명이 곳곳에 포진해있다. [사진 게방식당]

사진이 잘 나오는 조도를 맞춘 조명이 곳곳에 포진해있다. [사진 게방식당]

그렇다면 정작 중요한 맛은 어떨까. 외관이 지나치게 깔끔해 혹시나 깊은 맛을 내야하는 한식, 그 중에서도 게장의 맛이 제대로 날지 슬며시 의심이 올라온다. 자리에 앉아 메뉴를 보니 간장게장 세트(시가), 양념게장 세트(2만9000원), 새우장 세트(1만5000원), 전복장 세트(1만8000원) 등 단출한 실내와는 달리 생각보다 다양한 종류의 음식이 준비되어 있다. 게알 백반(1만7000원), 새우장 백반(1만9000원), 조개 미역국(9000원) 등 단품 메뉴도 있어 인근 직장인들의 점심 메뉴로 환영받을만하다. 요즘에는 혼자 여행을 온 일본인, 중국인 관광객들도 자주 찾는다고 한다. ‘혼밥’하기 어려운 기존 게장 집과 달리 부담 없이 들러 맛있는 한 끼를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왼쪽부터 새우장, 전복장, 게알백반, 전복장백반, 새우장 백반. 가운데는 간장게장 세트,[사진 게방식당]

왼쪽부터 새우장, 전복장, 게알백반, 전복장백반, 새우장 백반. 가운데는 간장게장 세트,[사진 게방식당]

이 집의 대표 메뉴인 간장게장 세트를 시켰다. 다섯 가지의 기본 찬과 국이 함께 나온다. 주 메뉴인 간장게장은 먹기 좋은 크기로 잘려 유기그릇에 소담히 담겨 나왔다. 한 입 깨물어보니 탱글탱글한 게살이 입안을 가득 채운다. 짜지 않으면서도 감칠맛이 감도는 깔끔한 간장 맛이 일품이다. 우려와는 달리 굉장히 ‘클래식’한 간장게장 맛이다.

알이 꽉찬 국내산 꽃게에 진간장과 양조간장을 섞어 담근 간장게장. 짜지 않고 깔끔하다.[사진 게방식당] 

알이 꽉찬 국내산 꽃게에 진간장과 양조간장을 섞어 담근 간장게장. 짜지 않고 깔끔하다.[사진 게방식당]

고전적인 간장게장의 맛은 30년 동안 신사동에서 간장게장 집을 했던 방 대표 부모님의 솜씨다. 신사동 상권이 예전 같지 않아 3년 전 문을 닫았다. 오랫동안 지켜왔던 게장의 맛이 아까워 사업을 구상하다가 게방식당을 차렸다. 지금도 이곳의 모든 음식은 부모님이 관여한다.
방 대표는 “좋은 재료가 관건인 게장을 위해 재료 수급에 특히 신경을 썼다”며 “여러 업체에서 싱싱한 국내산 암꽃게만 받아쓰고 간장은 대구에서 된장은 포항에서 미역은 기장에서 가져 온다”고 말했다. 반찬에 사용되는 채소도 일반적으로 식당에서 쓰는 업소용 채소가 아니라 근처 시장에서 직접 장을 봐 사용한다고 한다.

기본 찬과 게장이 깔끔한 식기에 정갈하게 담겨 나온다.[사진 유지연 기자]

기본 찬과 게장이 깔끔한 식기에 정갈하게 담겨 나온다.[사진 유지연 기자]

게장과 새우장, 전복장에 쓰이는 간장은 모두 다르다. 보통 한 간장을 달여 한꺼번에 담그는 것이 일반적인데, 게장은 짜지 않게, 새우장은 매콤하게, 한 번 데쳐 장에 넣는 전복장은 진하게 각기 따로 만든다. 흔히 간장게장은 밥도둑으로 불린다. 그래서 게장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밥의 ‘퀄리티’다. 김포에서 직접 도정해온 쌀을 업소용 밥솥이 아니라 가정용 밥솥 네 개를 돌려가며 지어낸다. 순차적으로 밥을 지어 올려야하기에 처음에는 손발이 맞지 않아 20분이나 밥을 기다린 손님도 있었다고 한다.

맛 외에 다른 요소들도 세심하게 관리된 흔적이 있다. 아무리 잘 씻어도 비린내가 나기 마련인 물 컵 대신 생수 한 병씩을 내주고, 현직 모델 출신의 종업원들은 보다 깔끔한 인상을 위해 네일 아트를 받는다. 오후 3시부터 5시 30분까지의 브레이크 타임 동안엔 게장 특유의 잡냄새를 없애기 위해 일제히 향초를 켜고 플루건(살균 소독기)으로 소독을 한다. 

게방식당의 기본 세팅. 물컵 대신 생수 병을 낸다. [사진 유지연 기자]

게방식당의 기본 세팅. 물컵 대신 생수 병을 낸다. [사진 유지연 기자]

트렌드에 민감한 20~30대들이 주로 찾는다.[사진 게방식당]

트렌드에 민감한 20~30대들이 주로 찾는다.[사진 게방식당]

 게방식당은 가장 전통적인 음식과 가장 현대적인 공간의 만남, 그 반전은 얼마나 짜릿한 것인지를 알려준다. 또 하나, 이제 음식점이 맛뿐만 아니라 경험을 파는 공간이 되고 있음도 확인시켜주고 있다. 유지연 기자 yoo.jiyoen@joongang.co.kr

논현동 ‘게방식당’ 톰딕슨 조명에 몬타나 가구 #“‘아재 식당’ 되기 싫어 향초 놓고 조명 달았죠.” #공간은 모던, 맛은 클래식, 인스타그래머블의 끝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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