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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학교 생길줄 알고 집 샀는데 …‘학교총량제’에 발묶인 재건축 단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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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도시와 대규모 아파트 재건축 단지 주민들은 학교 신설을 희망한다. 하지만 교육부는 극히 제한적으로 신설을 허가해 갈등이 일고 있다. 사진 속 학교와 단지는 기사의 특정 내용과는 관계가 없다. [중앙포토]

신도시와 대규모 아파트 재건축 단지 주민들은 학교 신설을 희망한다. 하지만 교육부는 극히 제한적으로 신설을 허가해 갈등이 일고 있다. 사진 속 학교와 단지는 기사의 특정 내용과는 관계가 없다. [중앙포토]

“10차선 안 건너고 학교 갈 수 있게 해주세요."

지난 4일 세종시 정부세종청사 교육부 앞. 시민 50여 명이 이 같은 내용의 손팻말을 들고 집회를 열고 있었다. 이들이 가져온 현수막엔 "뭣이 중헌디! 아이들의 안전한 등하교길이 중하지"라고 적혀 있었다. 

이들은 서울 송파구의 재건축 아파트단지인 헬리오시티(옛 가락시영아파트) 입주 예정자들이다. 헬리오시티는 모두 9510세대 규모의 '매머드급' 단지다. 내년 말 입주가 시작된다. 입주 예정자들의 요구는 여기에 중학교를 세울 수 있게 교육부가 허가해 달라는 것이다. 

무슨 사연일까. 이 아파트단지에 살 초중고교생을 관할하는 강동송파교육지원청은 이 단지 안에 중학교 신설할 계획을 세우고 지난해 교육부에 허가를 요청했다. 초중고교 신설은 교육부가 예상 수요, 주변 학교 여건 등을 고려해 허가를 해줘야만 교육청이 학교를 세울 수 있다. 그런데 강동송파교육지원청의 계획을 교육부는 허가하지 않았다.  

송파 헬리오시티 입주자들 "9510세대 단지에 중학교 없어서야"

교육부는 허가를 하지 않는 것과 관련해 "헬리오시티에 새 학교를 지으려면 주변 학교를 폐교하거나 통폐합해야 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에 대해 강동송파교육지원청은 난감해 하고 있다. 이곳의 정세일 학생배치담당은 “지방 소도시면 몰라도 인구 밀집 지역인 송파구에선 폐교나 통폐합이 쉽지 않다”고 말했다. 

중학교 신설이 무산되면 헬리오시티 시티의 중학생들은 단지 주변의 학교 3곳으로 나뉘어 다녀야 한다. 이렇게 될 경우 주민들의 걱정은 "통학 거리가 멀기도 하지만, 학급당 학생이 40명이 넘는 과밀학급이 될 것"이란 것이다. 현재 인근 중학교 3곳은 전체 학생수가 1944명으로  한 학급 평균 학생이 25명이다. 그런데 이 아파트 단지에서만 중학생이 1400여명 늘어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단지 안에 중학교가 생길 것으로 믿고 입주를 결정한 주민들은 당황해하고 있다. 윤병일 헬리오시티 입주예정자협의회 대표는 "1만 세대 가까운 주민이 입주하는 대단지다. 학교 부지도 마련돼 학교가 당연히 생길 줄 알았는데 계획이 거부돼 답답하다. 정부가 현장에 와보지도 않고 지도만 펴놓고 기계적으로 계산할 문제가 아니다"고 말했다.

지난 4일 세종시 정부세종청사 교육부 앞에서 서울 송파구 헬리오시티 입주 예정자들이 학교 신설을 요구하는 집회를 벌이고 있다. [사진 헬리오시티 입주예정자협의회]

지난 4일 세종시 정부세종청사 교육부 앞에서 서울 송파구 헬리오시티 입주 예정자들이 학교 신설을 요구하는 집회를 벌이고 있다. [사진 헬리오시티 입주예정자협의회]

학교 신설을 둘러싼 갈등은 비단 이곳만이 아니다. 전국의 신도시나 대규모 재건축 지역에서 흔히 일어난다. 주민과 지역교육청은 학교 신설을 희망한다. 교육부는 학교 신설을 잘 허가해 주지 않는다. 이 때문에 양 측 간에 갈등이 발생한다. 


서울 구로구 항동 주택개발지구도 이런 사례다. 내년 말까지 아파트 등 5000여 세대 주택이 들어선다. 지난 2년 간 중학교 신설 계획을 4번 냈으나 모두 거부당했다. 올해 5번째 계획을 낼 예정이다. 학교가 새로 생기지 않으면 항동지구 중학생들은 어른 걸음으로 30~40분 떨어진 중학교에 배정받아야 한다. 


전북 전주의 신도시 ‘에코시티’도 초등학교 3곳, 중학교 2곳, 고교 1곳 신설을 추진해왔다. 하지만 지난해 초등학교 1곳만 승인을 받아 올해 신설 계획을 재신청했다.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올해 교육부에 접수된 학교 신설 계획은 전국에서 77건. 교육부는 중앙투자심사위원회 검토를 거쳐 이르면 다음주 중 이들 계획에 대한 승인 여부를 결정한다. 그러나 대다수는 거부될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4월에도 전국 78개 신설 학교 계획 중 12곳만 승인되고 10곳은 조건부 승인을 받아 통과율이 28%에 그쳤다. 천범산 교육부 지방교육재정과장은 “예전엔 통과율이 60~70%정도 됐지만 최근 2~3년 사이에 30% 안팎으로 떨어졌다"고 말했다. 

지난해 78곳 학교 신설 계획 중 28%만 승인

학교 신설을 거부하는 교육부의 논리는 "인구 감소에 따라 학생 숫자가 줄어든 주변 학교 교실을 우선 이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천 과장은 "저출산 등의 여파로 학생 수가 계속 줄 것으로 전망되는데 정부가 학교 신설을 무작정 허용할 수 없지 않느냐”고 말했다. 그러면서 “신도시에 학생이 늘어난다면 구도시 학교를 옮기거나 통폐합해야 소규모 학교가 양산되는 문제를 막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교육부는 신도시 등에서 학교 신설의 대안 중 하나로 인구 감소 지역에 있는 기존 학교를 이전하는 방안을 제시하고 있다. 또 새 학교를 지을 경우 다른 학교를 폐교하거나 주변 학교와 신설 학교를 통폐합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교육부의 이 같은 방향을 교육계에선 이른바 '학교 총량제'로 부른다. 정부가 학교의 총량을 일정하게 유지한다는 의미다. 공식적인 정책용어는 아니다. 


전국 초등학교 5곳 중 하나는 전교생 60명 안돼
교육부의 우려대로 소규모 학교는 꾸준히 늘어나는 추세다. 지난해 기준으로 전체 초등학교 6001곳 중 전교생이 60명 이하인 소규모 학교는 1232곳(20.5%)에 달한다. 전국 초등학교 5곳 중 1곳은 한 학년 학생이 10명을 넘지 않는다는 얘기다. 

소규모 학교 비율은 10년 전인 2006년 14.7%였지만 매년 늘고 있다. 이재림 한국교원대 교수는 “소규모 학교 증가 문제는 재정 효율성 외에도 교육적 적절성 여부를 검토해야 한다. 소규모 학교에선 학교를 다니는 내내 매우 제한적인 범위의 학생들과만 상호 교감을 하게 된다. 동아리와 방과후활동 다양성도 한정될 수 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송파·구로·전주 신도시 학교 신설 중 극소수만 허가 #교육부 "무조건 허가하면 소규모 학교만 양산 우려" #올해 전국 77개 학교 신설 신청, 다음주 중 판가름 #경제적 효율성, 보편적 교육권 놓고 찬반 입장 갈려

◇ 전교생 60명 이하 소규모 초등학교 얼마나 되나

자료: 한국교육개발원 교육통계(2016)

자료: 한국교육개발원 교육통계(2016)

교육부가 학교 신설에 소극적인 또 다른 이유는 계획만큼 학생이 입학하지 않아 예산을 낭비하는 경우가 많아서다. 실제 지난 2011년에 새로 지은 학교 101곳 중 20곳은 개교 5년이 지나도록 학생을 70%도 채우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저출산 여파…일부 신설 학교 학생충원률 32%
예를 들어 경기도 파주의 한 중학교는 학년당 10개 학급 규모로 개교했다. 하지만 지난해까지 학생 충원률이 32%에 그쳐 4개 학급만 운영하고 있다. 교육부는 "보통 1세대 당 학생 0.2명이 있다고 간주하고 학교 규모를 예측한다. 그런데 아파트 크기나 주변 환경에 따라 예측이 빗나갈 수 있다. 예산 낭비를 막으려면 실제 입주 추이를 지켜보고 결정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학교를 없애고 짓는 문제를 경제 논리로만 접근해서는 안된다는 지적도 나온다. 김재철 한국교총 대변인은 “국가가 보편적 교육 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는 관점에서 보면 학교 신설을 너무 억제해선 안된다. 예산 효율성을 높이려면 교육부가 국토교통부나 행정자치부 등과 함께 학교 규모 예측부터 정확히 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희규 신라대 교수는 “경제적 효율성 기준에 따라 소규모 학교를 없애려고만 할 것이 아니라 나름의 특성화가 가능한 곳은 살려서 지역을 보호해야 한다. 반대로 무조건 신도시 안에 학교를 짓자고 주장하기보다 구도시와의 접경 지역에 학교를 세우고 대중교통을 확충하는 등의 대안적 방법을 생각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남윤서·정현진 기자 nam.yoonseo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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