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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ek&영화] 뻔해도 다시 한 번! 백마 탄 왕자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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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면

주연:현빈·이연희
장르:하이틴 로맨스
홈페이지:(www.100manlove.co.kr)

20자평:백마 탄 왕자님과 신데렐라의 사랑은 이제 그만.

‘백마 탄 왕자님’과 가난하지만 예쁜 소녀는 왜 꼭 사랑에 빠져야 할까. 냉정하게 따져보면 어울리는 구석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없는 커플인데. 그러나 10대 소녀들의 공상 속에서는 얘기가 달라진다. 어른들에겐 황당하고 유치한 이야기라도 아직 세상을 모르는 소녀들에겐 충분히 아름답고 환상적일 수 있기 때문이다. ‘신데렐라’나 ‘콩쥐팥쥐’에서부터 현대의 순정만화에 이르기까지 ‘왕자님 이야기’가 소녀들에게 꾸준히 사랑받는 이유다.

'백만장자의 첫사랑'(감독 김태균, 9일 개봉)은 더도 덜도 아닌 딱 순정만화 같은 영화다. 따라서 10대 소녀 같은 감수성을 지니지 않은 관객에게는 주의를 요한다. 꽃미남 왕자님과 순박한 소녀의 사랑을 믿는 관객에게는 이 영화가 아름답게 보이겠지만 그렇지 않은 관객이라면 영화를 보는 두 시간 내내 "말도 안돼"라는 푸념만 잔뜩 늘어놓을 가능성이 크다.

제목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이 영화의 주인공은 백만장자 소년이다. 구체적으로 말해 재벌가의 유일한 후계자로 할아버지가 물려준 막대한 유산을 상속받게 된 재경(현빈)이다. 이 정도면 현대판 '백마 탄 왕자님'의 조건은 다 갖춘 셈이다. 그런데 유산상속에는 뚱딴지같은 조건이 붙어 있다. 강원도 산골의 보람고등학교를 반드시 졸업해야 한다는 것이다. 할아버지의 유언이 그렇다는 것 외에는 아무런 설명도 없다.

재경이 투덜투덜 찾아간 강원도 산골에는 신데렐라 같은 소녀가 살고 있다. 착하고 성실한 데다 예쁘기까지 한 은환(이연희)이다. 물론 재경과 은환이 처음부터 사랑에 빠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재경은 은환을 시골뜨기라고 무시하고 깔본다.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달라진다. 멜로 드라마의 공식에 따라 두 사람이 마주치는 기회가 많아지면서 재경은 순수한 마음을 가진 은환에게 끌리게 된다. 그리고 끌리는 감정은 이내 사랑으로 발전한다. 재경을 유혹하는 서울의 날라리 여자가 은환의 경쟁자로 나타나기는 하지만 이내 알아서 사라지기 때문에 변변한 삼각관계도 없다.

옛날 동화라면 여기서 '두 사람은 결혼해 오래오래 행복하게 잘 살았습니다'라는 식으로 막을 내렸을 것이다. 그러나 영화는 관객들의 눈물을 짜내기 위한 슬픈 결말을 선택한다. 바로 불치병에 걸린 소녀의 죽음이다. 이 점에서는 지난해 말 개봉한 송혜교.차태현 주연의 영화 '파랑주의보'와 매우 비슷하다. 첫사랑 소녀와 가장 아름답게 헤어지는 길은 죽음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겠지만 어딘가 식상한 느낌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이 영화의 또 다른 특징은 강원도 산골에 대한 환상이다. 아무리 산골이라도 그 정도로 순수한 사람은 실제로 존재할 것 같지 않지만 영화는 애써 '강원도 산골=순수.순박'이라는 판타지를 관객에게 심어주려 한다. '선생 김봉두'(2003년)와 '웰컴 투 동막골'(2005년)에 이어 이제 한국 영화에서 강원도 산골은 순수함의 대명사가 되어가는 듯하다. 그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는 것이 이른바 '강원도 4인방'이다. 재경과 은환의 같은 반 친구인 이들의 말과 행동은 완전히 초등학생 수준이다. 도저히 고3이라고는 볼 수 없는 순진무구함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그것을 단적으로 드러내는 사건이 재경과 명식(이한솔)의 싸움이다. 재경은 일부러 시비를 걸어 명식을 늘씬하게 두들겨 패지만 정작 얻어맞은 명식은 복수는커녕 재경을 집으로 초대해 밥을 먹인다. 재경의 아버지는 한 술 더 떠 명식을 나무라며 앞으로 친하게 지내라고 당부한다. 때린 사람이 오히려 황당해 어안이 벙벙해지는 순간이다.

노골적으로 사랑을 고백하는 닭살 돋는 대사도 눈에 띈다. "떨어지는 빗방울을 모두 합한 것보다 너를 사랑해" "왜 니가 좋을까 생각하다 니가 또 보고 싶어진다"는 식이다. 드라마 '파리의 연인''프라하의 연인'으로 유명한 김은숙 작가의 작품이다. 이런 대사를 유치찬란하다고 여기는 사람은 영화를 보지 않는 게 좋다. 그러나 이런 만화 같은 대사에 공감하는 어린 소녀의 마음을 지녔다면 영화는 감동적으로 다가올 수 있다.

주정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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