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각 가격 치솟아 고민하는 도시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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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6면

도시바 메모리반도체 인수전을 놓고 일본 정부가 고민에 빠졌다. 대만의 홍하이정밀공업이 도시바가 거절하기 힘든 수준의 인수 희망가를 제시했기 때문이다. 기술보안이냐 실리냐를 놓고 결단만 남았다.

대만 업체서 인수가 31조 제시 #기술유출과 실리 사이서 저울질 #작년 4~12월 5조5200억 순손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홍하이가 도시바 메모리반도체 인수가로 270억 달러(약 3조엔, 31조원)를 적었다고 10일(현지 시간) 보도했다. 인수 경쟁사인 한국 SK하이닉스와 미국 브로드컴·웨스턴디지털 등의 희망 입찰가는 1조5000억엔(10조5400억원)~2조엔 정도다. 도시바가 최초로 제시한 매각 희망가(2조5000억엔)마저 웃돈다. 일본 정부와 도시바는 보안과 기술 유출을 우려해 중국 기업에 매각하기 어렵다는 입장을 여러 차례 밝혀왔다. 이에 홍하이가 입찰가를 대폭 높이는 전략으로 맞불을 놓은 셈이다.

WSJ은 “홍하이가 지난해 샤프를 인수할 때도 인수가를 올려 경쟁자를 제친 바 있다”며 “이번 도시바 반도체 인수전에서도 비슷한 전략을 쓰고 있다”고 설명했다.

일본 기업이 입찰에 참여하지 않은 가운데 미국 기업에 매각하려던 일본 정부로서는 난감한 상황에 빠졌다. 도시바를 재건하려면 매각 차익을 늘려야 한다. 그러나 기술 보호와 안보문제를 포기할 수 없다는 게 일본 정부의 입장이다. 데이터센터 등에 폭넓게 쓰이는 도시바 반도체를 중국 기업에 넘기면 해킹 가능성이 있다. 다만 홍하이가 인수에 성공하더라도 실사 과정에서 도시바의 부채가 추가로 발견되거나 예상보다 자산이 적으면 인수가격을 낮출 수 있다. 홍하이는 지난해 샤프 인수 당시 생각하지 못한 부채를 발견했다며 당초 입찰가격의 3분의 2 수준인 3888억엔으로 인수가를 낮춘 바 있다.

한편 도시바는 두 차례 연기 끝에 11일 실적을 발표했다. 2016년 4~12월의 3개 분기동안 5325억엔(약 5조5167억)의 당기순손실을 기록해 2256억엔의 자본잠식 상태에 빠졌다. 도시바는 특히 감사법인의 감사의견 없이 실적 발표를 강행해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도쿄증권거래소는 상장 폐지 등 대응 여부를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김유경 기자 neo3@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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