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기대에 못 미친 첫 미·중 정상회담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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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6호 02면

사설

북핵 문제 등의 돌파구를 마련해 줄 것으로 기대됐던 미·중 정상회담이 7일(현지시간) 별 성과 없이 끝났다. 회담 전 미국 백악관 측이 공언한 대로 한·중 간 갈등을 빚고 있는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사드) 체계 배치 문제가 논의되긴 했지만 특별한 진전이 없어 우리를 더욱 실망케 한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의 첫 정상회담을 앞두고 북핵 해결을 위해서는 어떠한 강경책도 마다하지 않겠다는 뜻을 여러 번 밝혔었다. 그는 회담장인 플로리다주 마라라고 휴양지로 날아가는 전용기 안에서 “중국이 대북 압박을 강화하지 않으면 미국이 독자적으로 행동할 준비가 돼 있다”고 말했다. ‘독자 행동’이란 카드로 강하게 압박해 북핵 문제에 대한 중국 측 협조를 끌어내려는 심산으로 해석됐다.

하지만 두 정상은 이틀간 세 차례나 회동했음에도 불구하고 공동 기자회견은커녕 공동성명조차 채택하지 않았다. 대신 국무·재무 등 미국 측 관계 장관들이 나서 회담 내용을 전해줬다. 만남이 삐거덕거렸음을 짐작하게 하는 대목이다. 렉스 틸러슨 국무장관이 “정상회담에서 시 주석이 북핵 문제가 심각한 단계에 이르렀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시각을 공유하고 서로 협력하기로 했다”고 밝혔지만 전혀 새로울 게 없는 원론적 내용이다.

사드 문제에 대해서는 회담 직후 어떤 언급도 없어 한때 “아예 논의에서 빠진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올 정도였다. 숀 스파이서 백악관 대변인이 지난달 “이번 미·중 정상회담의 목적은 북한 및 사드 배치로 고조되고 있는 긴장을 해소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한 것과는 완전히 다른 분위기였다.

결국 회담 한참 후 트럼프 대통령이 황교안 대통령권한대행에게 전화를 걸어 “사드 배치에 대한 미국 측 입장도 전했다”고 밝혀 그나마 이 문제가 언급됐다는 정도는 알게 됐다. 그럼에도 중국이 어떤 반응을 보였으며 두 나라가 어떻게 하기로 했는지는 전혀 알 길이 없다. 그저 논의됐다는 사실에 만족해야 할 서글픈 신세가 된 것이다.

이처럼 한반도의 운명에 결정적 영향력을 갖고 있는 양대 강국이 평행선을 걷고 있는 가운데 미국이 독가스 살포전을 자행한 시리아에 미사일 공습으로 맞섬으로써 북핵을 둘러싼 한반도 정세는 한발 더 심각한 위험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는 시리아 공습 직후 우리 정부 측에 “화학무기를 다량으로 보유한 북한의 도발 가능성을 염두에 둔 조치”라고 알려왔다고 한다. 사실상 중국과 북한을 향해 “어느 때든 군사적 행동에 나설 수 있다”는 메시지를 보낸 셈이다. 중국이 나서지 않으면 미국이 독자적으로 행동하겠다는 트럼프의 거듭된 발언과 같은 맥락이다. 최근 거듭된 미사일 발사 실험에 이어 김정은 정권이 조만간 추가 핵실험을 시도할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 나오는 시점에 나온 미국의 초강경 자세가 자칫 한반도에 어두운 그림자를 몰고 오지 않을지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북한이 어제 노동신문을 통해 “(한국은) 미국과의 동맹 강화가 아니라 동족과 손을 잡는 것이 살 길”이라며 “만일 조선반도(한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나면 남조선 청년들부터 미국의 총알받이가 돼 개죽음을 당하게 될 것”이라고 억지 주장을 늘어놓은 것도 이런 기류를 의식한 제스처라는 분석이다.

이번 회담에서 미국은 북핵 및 남중국해 문제와는 달리 중국과의 최대 경제 현안인 대중 무역적자에 대해서는 ‘100일 계획’이라는 괄목할 만한 성과를 냈다. 100일 동안 각종 수단을 통해 미국의 대중 수출을 늘림으로써 무역 불균형을 해소하겠다는 것이다. 경제성장과 일자리 창출을 지상 과제로 삼아 온 트럼프다운 처신이다. 트럼프의 ‘아메리카 퍼스트(America First)’ 원칙과 시 주석의 ‘중국몽(中國夢)’ 전략 틈에 끼여 북핵 및 사드 문제 해결책은 질식하고 만 것이다.

이런데도 정부는 “한·미 양국 간에 어느 때보다 긴밀한 전략적 소통과 공조가 유지되고 있다”는 객쩍은 소리만 되풀이하고 있다. 외교부 장담대로 미국과의 소통이 원활하고 우리의 요구가 감안됐다면 이번 회담에서 최소한 사드 갈등 해소와 관련된 진일보된 이야기가 나왔어야 하는 것 아닌가.

권력 교체기와 맞물려 한반도 관련 사안들이 한국이 배제된 채 강대국끼리 처리될 수 있다는 ‘코리아 패싱(Korea Passing)’의 경고등이 켜진 지 오래다. 외교 당국은 물론 다음 정부를 맡겠다고 나선 각 당의 대선후보들은 북한의 망동을 막는 것은 물론 먹구름이 드리워진 한반도를 위기에서 구해낼 책임 있고 효과적인 해법 마련에 지혜를 모아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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