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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 대통령 직선제 개헌 … 시작은 85년 홍진기의 제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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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전두환 전 대통령이 1985년 말 직선제로의 개헌을 검토하기 시작했으며 홍진기(86년 작고·사진) 전 중앙일보 회장의 직언이 계기가 됐다고 증언했다. 집권당인 민정당의 노태우 후보가 대통령 직선제 개헌 요구를 받아들인 6·29선언으로부터 1년6개월여 앞선 시점이다.

전두환 전 대통령 회고록서 밝혀 #“청와대서 단독 면담 때 얘기 꺼내”

전 전 대통령은 최근 발간한 『전두환 회고록 2-청와대 시절』에서 “야당 측 인사가 아닌 사람들 중에서도 나에게 직선제를 하는 게 어떻겠느냐고 의견을 묻는 사람들이 있었다”며 “85년 말 중앙일보의 홍진기 회장이 청와대를 방문했다”고 소개했다. 이어 “그는 얘기 끝에 느닷없이 대통령 직선제 문제를 끄집어냈다. 방문 목적이 그랬던 것은 아니지만 마음먹고 직선제 얘기를 꺼내는 듯했다”고 술회했다.

같은 해 2·12 총선에서 직선제 개헌을 공약으로 내세운 DJ(김대중)·YS(김영삼)가 이끄는 신한민주당이 돌풍을 일으키며 제1야당의 자리에 올랐다. 이들이 직선제 개헌을 위한 1000만 명 서명 운동에 들어간 건 이듬해의 일이다. 전 국민적 요구로까지 승화된 건 87년 봄, 특히 전 전 대통령에 의한 개헌 논의 중단 조치(4·13 호헌 조치) 이후다.

강원택 서울대(정치학) 교수는 “야당이 개헌을 내걸고 결집해 나가기 전 이미 홍 회장이 제안했다는 의미”라며 “ 기존 학계에 알려진 것보다 훨씬 전”이라고 말했다. 이어 “절대 권력이던 전 전 대통령의 생각을 바꿔 건설적인 변화의 방향을 선도했다는 점도 인상적”이라고 덧붙였다. 홍 회장은 그날 전 전 대통령에게 “직선제로 가도 (여권이) 승산이 있다”고 설득했다고 한다.

전 전 대통령은 92년 간행된 『전두환 육성증언』에서 ‘직선제에 관한 구상은 언제부터 이뤄졌는가’란 질문에 “내가 5공화국 헌법의 간선제에 의한 대통령 선출 방법이 여당한테 매우 위험할 수 있다는 문제점을 파악하게 된 것은 정확한 날짜는 기억이 안 나지만(86년 이전) 한 원로 언론계 인사를 단독으로 만났을 때 그분이 말한 것을 듣고나서였다”고만 말했었다.

회고록에 따르면 전 전 대통령은 이듬해 여러 경로를 통해 추가로 직선제 제안을 받았다. 여기엔 부인 이순자 여사와 미국에서 유학 중이던 장남 전재국씨도 포함됐다. 청와대 참모들의 건의는 87년 들어서였다. 6월15일 김윤환 정무1수석에 이어 이튿날 박영수 청와대 비서실장과 김용갑 민정수석이 같은 취지의 보고를 했다.

전 전 대통령이 최종 결심을 한 건 87년 6월 16일 밤이었다고 한다. 이날 심경에 대해 전 전 대통령은 “나의 소신을 접고 직선제를 받아들임으로써 평화적 정권이양이라는 40년 헌정사의 숙제를 풀고 (88년 여름) 올림픽 개최라는 역사적 행사를 성공시킬 수 있다면 나는 잃는 게 아니라 보다 큰 것을 얻게 된다. 지는 게 아니라 이기는 것”이라며 “직선제 개헌 요구의 완전 수용과 가능한 모든 민주화 조치의 단행이란 큰 결심을 굳히자 그간 잠못 이루며 고심했던 일이 한낱 꿈이었던 것처럼 느껴지며 마음이 한없이 평화스러워지는 기분”이라고 적었다. 6·29선언으로부터 13일 전이었다. 6·29선언이 노 후보의 폭탄선언이란 세간의 통념과 달리 ‘연출 전두환, 주연 노태우’란 진술이었다.

◆6·29선언

87년 6월 29일 당시 노태우 민정당 대통령 후보의 시국 수습 방안. 여야 합의하에 조속히 대통령 직선제 개헌을 하고, 새 헌법에 의한 대통령 선거를 통해 88년 2월 평화적으로 정권을 이양한다는 등의 8개 항이 담겼다. 이에 따라 10월 개헌이 이뤄졌다. 같은 해 대통령 선거에선 노 후보와 3김(DJ·YS·김종필(JP)) 등이 출마했으며 노 후보가 36.6%를 득표, 13대 대통령으로 선출됐다.

고정애 기자 ockha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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