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천2백억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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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4천2백억원」이 열마나 큰 돈인지는 보통사람의 셈으로는 얼른 짐작이 안된다. 그처럼 감잡지 못하는 우둔한 사람들을 위해 몇가지 비유를 해 본다.
1만원짜리 지폐를 한줄로 늘어 놓으면 자그마치 6천8백km나 된다. 서울과 부산을 8번 왕복해야 하는 거리다. 경부선이 쩨쩨한 거리라면 지구의 적도를 따라 늘어 놓아보자. 반경(반경)을 늘어놓고도 남는다. 이만하면 가위 천문학적 수자라고 해도 과장이 아니다.
좀 더 실감나는 얘기도 있다. 남녀노소, 국민 모두에게 1만원씩 나누어주면 그 액수가 바로 4천2백억원쯤 된다. 가구당 4,5만원이라면 푸짐하진 않아도 쑬쑬한 돈이다.
바로 내년 우리나라 예산가운데 국민복지증진을 위한 돈이 5천3백억원쯤이다. 그 속에는 국민연금제, 의료보험, 영세민지원, 기능인양성, 근로자복지시설 확충비용등이 포함된다. 정부는 국민복지를 위해 87년대비 40%의 증액을 했노라고 생색을 냈었다. 여기에 4천2백억원을 얹는다면 국민생활은 한결 윤택해질 것이다.
지난 여름, 그 난리를 치른 태풍피해, 홍수피해액이 약 4천억원이었다. 각 매스컴들이 그처럼 극성스럽게 모아들인 수재의연금은 3백15억원이었다.
국민학교 하나 세우는데 50억원이 든다고 치면 4천2백억원은 80여개의 학교를 지을 수 있다.
내년도 우리나라의 과학기술및인력개발 지원금이 5천8백억원이다. 4천2백억원을 보탠다면 꼭1조원이 된다. 그만한 규모의 기술개발투자를하면 우리 경제의 국제경쟁력은 저만큼 높아질 것이다.
바로 그 4천2백억원은 무슨 돈인가. 11개 시중은행이 대한선주에 빌려준 돈이 모두 7천9백38억원. 그 가운데 4천2백억원은 부실자출로 쳐서 은행들이 아예 받을 생각을 않기로 했다.
절손처리한 것이다.
한기업이, 그것도 대기업이 경영을 잘못하면 얼마나 큰 사회적 손실을 가져오는가를 똑똑히 보여주는 교훈이다.
기막힌 노릇은 국민경제에 이런 손실을 끼치고도 누구하나 책임을 지는 사람이 없다는 사실이다.
돌아 앉아서 4천2백억원의 무게나 달아보고 있는 국민의 신세가 그저 처량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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