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뽀로로 주제로 3분짜리 환상곡 "즉흥연주는 도미노처럼 저절로"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솔 미 도 레 라 솔.’ 여섯 음은 아이들용 애니메이션 ‘뽀로로’ 주제다. 피아니스트 가브리엘라 몬테로는 이 여섯 음에서 어떤 음악을 발전시킬까.
몬테로는 즉흥연주로 유명한 베네수엘라 태생의 피아니스트다. 그는 세계 어느 도시에서든 독주회를 열면 청중에게 즉석에서 멜로디를 받는다. 청중은 휴대전화 벨소리부터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주제, 생일축하 노래, 웨딩마치, 그 나라의 민속 음악까지 제안한다. 몬테로는 제안받은 주제로 그 자리에서 새로운 음악을 만들어낸다. 신기하기도 하지만, 더 놀라운 것은 즉석에서 바로 만든 음악의 완성도다.
몬테로는 2009년 버락 오바마의 미국 대통령 취임식에서 연주한 피아니스트고, 1995년 쇼팽 국제 콩쿠르 3위 입상자다. 하지만 가장 유명한 건 즉흥연주 때문이다.
4일 화상인터뷰에서 ‘뽀로로’ 주제 여섯 음을 들려줬다. 몬테로는 듣자마자 피아노로 한 번 쳐보고 3분 정도 즉흥연주를 했다. 낭만적인 선율과 화음으로 이어지는 ‘뽀로로’ 환상곡이었다. ‘뽀로로’ 주제는 들릴락말락 하다가, 큰 음악으로 발전했다가, 구성진 화음으로 끝났다.
이 피아니스트는 어떤 과정으로 즉흥연주를 하는 걸까. 어떻게 하면 아무 것도 없는 데에서 음악이 뚝딱 나올까. 화상 인터뷰에서 물었다.

즉흥연주로 유명한 피아니스트 가브리엘라 몬테로 화상인터뷰 #3세 때부터 즉흥연주, "즉흥연주할 때 아무 생각도 안 해" #"내가 조절하는 것 같지 않고 무언가 내 몸을 거쳐가는 것 같다" #쇼팽 콩쿠르 3위, 오바마 취임식 연주 등 세계적 명성의 피아니스트 #21일 한국 첫 독주회도 청중에게 멜로디 받아 즉흥연주

4일 화상인터뷰를 하고 있는 몬테로. 인터뷰 도중 '뽀로로' 주제에 의한 즉흥연주도 선보였다. 김호정 기자

4일 화상인터뷰를 하고 있는 몬테로. 인터뷰 도중 '뽀로로' 주제에 의한 즉흥연주도 선보였다. 김호정 기자

즉흥연주를 할 때 어떤 생각을 하나?
“아무 생각도 안 한다. 그게 아주 신비하다. 계획도 물론 없다. 연주하면서 결정하는 것도 없다. 모차르트 협주곡의 카덴차를 만들어서 칠 때도 매번 다르게 친다. 아무 것도 생각하지 않는다. 어디로 갈지도 모르고….”
화음이나 리듬도 결정 안 하나?
“전혀 안 한다. 말하자면 음악이 그냥 내 몸을 거쳐가는 것 같다. 나는 그저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지켜보기만 한다. 내가 조정하는 것 같지 않다. 아, 다만 청중이 준 주제 멜로디는 계속해서 생각한다. 잊어버리지 않도록.”
유튜브에 보니 주제 멜로디를 듣고 나면 몇번 반복해서 쳐보면서 연습을 하는 것 같다.
“연습은 아니다. 주제를 기억하고 느껴보는 것이다. 즉흥연주할 때는 생각을 안 하고 느낀다. 도미노 게임 같다. 하나를 밀면 그 다음이 그냥 넘어간다. 연쇄적이다. 도미노처럼 저 혼자 일어나는 일이다. 마법같다.”
그렇다면 무엇이 즉흥연주를 하게 만드는 것 같나? 신이 하는 일처럼 보인다.
“여러 면으로 볼 수 있다. 내 남편은 음악인인데 과학에 관심이 많다. 한번은 내 뇌에서 일어나는 일을 봐야겠다고 하더라. 그래서 미국 존스 홉킨스 의대의 신경과학자에게 나를 데리고 갔다. 오랫동안 내 뇌를 연구했는데 아주 흥미로운 사실을 찾았다. 내가 베토벤ㆍ모차르트처럼 쓰여진 곡을 칠 때와는 전혀 다른 부분의 뇌를 쓰고 있다는 거다. 즉, 악보 연주를 할 때 쓰지 않는 부분으로 즉흥연주를 한다는 뜻이다. 나도 신비하다. 그래서 즉흥연주를 할 때 아무 생각도 하지 않는 것 같다.”
타고났다고 할 수 있나.
“음악적으로 그런 것 같다. 나는 어려서부터 항상 즉흥연주를 했다. 3살 때부터 했던 것 같다. 부모님은 둘 다 음악인이 아니었는데, 내가 음악을 만든다는 걸 이해했다. 그래서 카세트 테이프에 녹음을 했다. 약 150개 정도가 있다.”
어렸을 때도 지금처럼 본능적으로 즉흥연주를 했나.
“그렇다. 언어의 이론을 따로 배우지 않아도 대화를 할 수 있게 되는 것처럼, 나에겐 즉흥연주가 그랬다. 아마 음악이라는 언어를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
어릴 때의 즉흥연주도 지금 스타일과 비슷한가.

“7세 때쯤 즉흥연주한 카세트 테이프를 최근에 들었는데 바르토크ㆍ쇼스타코비치처럼 20세기 작곡가들의 음악과 비슷했다. 그때는 그런 음악을 들어본 적도 없었는데 말이다. 현대적이고, 지금보다 더 어두웠다. 그 음악이 어디에서 왔는지 모르겠다. 나도 아주 이상하게 생각한다.”
두 딸은 어떤가. 즉흥연주의 재능이 유전됐는지 궁금하다.

“음악적이긴 하지만 조금 다르다. 14세인 둘째 딸은 노래를 하고 작곡 능력이 있지만 즉흥연주 능력과는 조금 다르다.”
즉흥연주를 하고나면 어떤 기분인가?

“아주 행복하다. 즉흥연주는 나에게 세상에서 가장 쉬운 일이고, 매일 항상 하고 싶은 일이다. 한번은 친구들과 파티를 했는데 7시간동안 즉흥연주를 한 적도 있다.”
베토벤ㆍ모차르트 같은 곡을 칠 때와 기분이 다른가?

“그때는 존경심이 든다. 물론 거기에 내 개인적인 인생과 생각을 불어넣으려고 한다. 어떤 사람은 내가 베토벤ㆍ모차르트를 칠 때도 즉흥연주처럼 들린다는 말을 한다. 내가 단순히 음표만 연주하는 게 아니라 개인적인 삶을 녹여넣으려고 하기 때문일 것이다.”
즉흥연주가 고전음악 해석에도 영향을 줄까?

“즉흥연주를 하면 음악을 좀 더 열린 입장에서 바라볼 수 있다. 작곡가가 어느 시대, 어떤 국가에 살았든 그와 연결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게 된다. 작품 해석이 좀 더 실제적이 될 수 있다. 즉흥연주를 하면 기존 작품에서도 악보와 음표 이상의 것을 볼 수 있게 된다.”
주제를 직접 만들어서 즉흥연주를 할 수도 있는데 청중에게 제안 받는 이유는?

“청중이 공연의 한 파트가 되길 원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내가 만든 주제로 즉흥연주를 하면 미리 준비했다고 의심하는 청중도 있다.(웃음) 또 대부분의 클래식 공연장에서는 청중이 말할 권리가 없다.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하지만 내 공연에서는 청중이 노래도 하고 멜로디를 제안한다. 그게 아주 좋다.”
21일 LG아트센터에서 첫 한국 독주회를 여는 피아니스트 가브리엘라 몬테로. [사진 LG아트센터]

21일 LG아트센터에서 첫 한국 독주회를 여는 피아니스트 가브리엘라 몬테로. [사진 LG아트센터]

현대적인 공연장이 발달하고 음악 공연이 상업화하기 이전까지 모든 작곡가는 연주자였다. 작곡가들은 자신의 작품을 연주하면서 많은 즉흥적 변화를 시도했다. 연주자의 재량도 지금보다 컸다. 단지 악보에 적힌대로 연주하는 대신 느낌과 생각으로 음악을 바꿨다. 기량을 뽐내기도 했다. 하지만 작곡가와 연주자가 점차 분리되고, 악보에 있는대로 연주하는 게 전통이 되면서 즉흥연주의 영역은 축소됐다. 따라서 몬테로는 영감에 따라 아주 오래 전의 전통을 따르고 있는 것이다. 음악과 음악인이 지금보다 자유로웠던 그 시절을 상기시키면서 말이다.
몬테로는 이달 21일 오후 8시 서울 역삼동 LG아트센터에서 첫 내한 독주회를 연다. 전반부에는 브람스ㆍ리스트를 연주하고 후반부에는 즉흥연주를 한다. 역시나 청중에게 다양한 멜로디를 제안받을 예정이다. 음악의 찬란한 역사을 불러낼 수 있는 흥미로운 멜로디들을 청중이 준비할 차례다.
김호정 기자 wisehj@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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