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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톱 밑 가시’ 뺐다던 푸드트럭, 5000만원 날리고 줄폐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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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지난달 31일 서울 은평구 녹번동 서울혁신파크(사회적기업 입주 공간) 내에 문을 연 푸드트럭들. 목이 좋은 번화가에서 약 400m 떨어진 곳에 있다. [사진 김성룡 기자]

지난달 31일 서울 은평구 녹번동 서울혁신파크(사회적기업 입주 공간) 내에 문을 연 푸드트럭들. 목이 좋은 번화가에서 약 400m 떨어진 곳에 있다. [사진 김성룡 기자]

지난해 3월부터 푸드트럭에서 커피와 샌드위치를 팔아 온 박자현(37·여)씨는 지난달 초에야 안정된 영업 장소를 얻었다.

2014년 위생법 등 규제 풀었지만 #목 좋은 곳은 기존 상인과 갈등 #시·구청 지정 공유지서만 운영 가능 #서울 468대 등록, 168대는 폐업 #“영업 가능한 장소 확대해야”

그의 장사터는 서울 은평구에 위치한 사회적기업들이 입주해 있는 서울혁신파크 내 도로 옆이다. 하루 매출은 기대에 한참 못 미치는 10만원 남짓이다. 박씨는 “일주일 내내 트럭을 몰고 나왔지만 한 달간 순이익은 30만원이다. 안정된 곳이어서 다행이긴 한데 여긴 유동인구가 너무 적다”고 말했다. 실제 박씨가 장사를 하는 곳은 번화가에서 400m가량 떨어져 있다. 그나마 박씨는 운이 좋은 편이다. 그는 “이 자리에 오기 전엔 장사터를 구하지 못해 일주일에 하루 정도 일하는 게 전부였다. 지금도 장소마저 못 구해 차량 개조비 5000만원만 날리고 몇 개월 만에 운영을 포기하는 이들이 부지기수다”고 말했다.

창조경제의 상징이었던 ‘푸드트럭’들이 갈 곳을 찾지 못해 방황하고 있다. 지하철역 주변이나 기존 상권가처럼 장사가 될 만한 곳은 사유지이거나 기존 상인들과의 갈등을 피할 수 없는 곳이어서다. 이런 곳을 피한다고 해도 관할 시·구청이 허락한 곳이 아니면 과태료를 물어야 한다. 합법적으로 푸드트럭을 운영할 수 있는 장소는 시·구청이 정해준 공유지뿐이다. 이런 공유지 대부분은 사람이 적은 공원이나 공공기관 앞마당처럼 유동인구가 많지 않은 곳이다. 공유지별로 푸드트럭 운영자와 임대 계약을 맺는 관리 주체가 시·구청 또는 산하 기관 등으로 모두 다르기도 하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푸드트럭이 어디에 얼마만큼 들어섰는지 제대로 파악되지 않는다.

푸드트럭이 합법화된 건 2014년이다. 그해 3월 당시 박근혜 대통령 주재로 열린 ‘제1차 규제개혁장관회의’에서 푸드트럭을 막는 자동차관리법·식품위생법상 규제가 ‘손톱 밑 가시’로 거론됐다. 정부는 그해 8월 합법화시켰고, 2000대 이상 창업과 6000명 이상의 일자리 창출이라는 목표치를 제시했다. 서울시에 따르면 2015년 말부터 지난달 말까지 서울시내 각 자치구에 등록 신청을 한 푸드트럭은 468대에 그친다. 이 중 168대는 폐업했다. 정정희 서울시 외식업위생팀장은 “여러 군데에서 장사를 하려고 구청별로 중복해 등록하거나 잠시 운영을 중단한 경우까지 고려하면 그 수가 더 적을 것”이라고 말했다. 태어날 땐 귀한 자식 같았던 푸드트럭이 이젠 오갈 데 없는 ‘홍길동’ 신세가 된 셈이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인재근 의원은 푸드트럭의 70%는 신고만 하고 실제 운영을 하지 않는 ‘유령 푸드트럭’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

3년째 푸드트럭을 운영해 온 이계수(50)씨는 “기존 상인과의 갈등이 일어나지 않으면서도 목 좋은 장소는 푸드트럭 운영자들이 잘 안다. 우리가 장소를 제안하면 시나 구청이 검토를 해 허가를 내주는 방식을 고려해 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곽종빈 서울시 소상공인지원과장은 “푸드트럭 운영자와는 소통 창구를 항상 열어놓고 있다”며 “영업 장소를 꾸준히 발굴하고 있고, 주변 상점들과 협업할 수 있는 운영 방식 등도 검토 중이다”고 말했다.

푸드트럭 활성화를 위한 지방자치단체들의 움직임이 없는 건 아니다. 서울시는 지난해부터 푸드트럭 100여 대가 참가하는 ‘밤도깨비야시장’(4~10월)을 열고 있다. 서울 서초구청은 강남역 주변에 트럭 20대가 들어설 ‘푸드트럭 존’ 3곳을 지정했다. 지난달엔 방송인 백종원씨 등을 초청해 운영자들을 대상으로 강연을 하기도 했다.

정광호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는 “진입 규제를 풀어주는 건 올바른 판단이지만 급하게 서둘렀다. 자영업자·창업전문가 등과 충분한 논의하고 시장 규모를 제대로 파악해 진행했어야 했다”고 말했다.

글=조한대 기자 cho.handae@joongang.co.kr
사진=김성룡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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