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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취재일기

족쇄 채우고 뛰어나가 창업하라는 정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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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최준호 기자 중앙일보 과학ㆍ미래 전문기자 겸 논설위원
최준호 산업부 기자

최준호 산업부 기자

미래창조과학부가 29일 ‘과학기술 기반 창업중점대학’ 시범사업 추진을 발표했다. 이달 말부터 3개 대학을 ‘창업중점대학’으로 선정해 대학별로 3억~7억원을 지원하고, 내년부터는 이를 대폭 확대한다. 캠퍼스에 4차 산업혁명을 위한 창업 문화를 꽃피우겠다는 계획이다.

미래부가 꾸는 꿈은 미국 스탠퍼드대학이다. 동문들이 창업한 구글·테슬라 같은 회사들의 총 매출이 2조7000억 달러에 이른다는 그 대학이다. 과학기술 기반 창업중점대학은 그간의 창업 아이템이 단순 아이디어나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에 집중돼 창업 아닌 ‘창업 놀이’에 그치는 경우가 많았다는 데 대한 반성이다. 백번 지당한 말씀이다. 하지만 정부가 창업중점대학을 지정하고, 예산을 지원한다고 판검사나 공무원이 되고 싶어 하는 대학생들이 가득한 한국의 대학이 스탠퍼드로 변신할 수 있을까.

현 정부의 창업 정책을 보면 ‘발목에 족쇄를 채우고 뛰어나가라’라는 표현이 떠오른다. 미래부의 노력을 평가절하하는 게 아니다. 하지만 창업을 가로막는 타 부처발(發) 족쇄는 그대로 두고 당근만 제시하니 답답할 노릇이다.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중앙일보는 지난달 27일 ‘대학을 4차 산업혁명 전진기지로 만들자’라는 리셋 코리아 기획기사를 통해 실행 과제를 제시했다. 그중 대표적인 두 가지가 ‘대표이사 연대보증’과 ‘스톡옵션 규제’ 폐지다. 대표이사 연대보증이란 기업의 대표이사가 법인인 회사의 채무에 무한 책임을 지는 것을 말한다. 이 시스템하에서는 회사가 한번 망하면 대표이사는 전 재산을 잃고 신용불량자가 될 수밖에 없다. 2013년 박근혜 정부 출범 때부터 얘기됐던 문제지만, 아직까지 변한 게 없다. 지난해 6월 더불어민주당의 김병관 의원이 대표이사 연대보증을 금지하는 법안을 발의했지만 국회 상임위 문턱을 넘지 못한 채 잠자고 있다. 김 의원은 “ 금융위가 반대하고 있어 통과가 사실상 어렵다”고 털어놨다.

스톡옵션도 마찬가지다. 현행법에 따르면 과세특례가 적용되는 벤처기업 임직원의 스톡옵션 행사가액 합계를 3년간 5억원 이하로 제한하고 있다. 스탠퍼드의 인재들이 박봉에도 벤처기업에 입사하는 것은 성공하면 스톡옵션 덕에 ‘대박’을 터뜨릴 수 있다는 희망 때문이다. 국민의당 오세정 의원이 지난달 발의한 ‘벤처 스톡옵션 조세특례법 개정안’은 조세특례 행사가액을 1년간 10억원으로 올리는 것으로 돼 있지만, 이 법안 역시 기획재정부의 반대로 상임위에서 낮잠 중이다. 한국 영재들 중에 테슬라의 창업주 일론 머스크보다 뛰어난 재능을 가진 학생이 없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어쩌면 4차 산업혁명을 가로막는 최대 장애물은 손과 발이 따로 노는 정부일지도 모르겠다.

최준호 산업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