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체 드러낸 200억 비자금] 200억 어떻게 분배했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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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완씨가 현대에서 배달받은 비자금 2백억원은 어떻게 권노갑씨에게 전달됐을까.

金씨는 일단 자신의 집에 돈을 보관하면서 수시로 權씨에게 전달하거나 權씨의 지시에 따라 돈이 필요한 제3의 인물들에게 직접 전달한 것으로 보인다.

權씨가 金씨의 집을 '금고'로 활용하면서 여기저기에 4.13총선 자금을 집행했다는 뜻이다.

金씨의 측근과 운전기사 등은 金씨가 현찰이 담긴 박스를 현대에서 받는 대로 부하 직원들을 시켜 평창동 자택의 반지하 창고 방에 쌓아뒀다가 필요할 때 수시로 꺼내 갔다고 증언했다. 이 방은 金씨가 골프채 등을 보관하는 곳으로, 노래방 기계도 설치돼 있어 金씨 가족들이 자주 노래를 부르기도 한 곳이다.

당시 權씨는 金씨에게서 제공받은 평창동 S빌라에 살고 있었고, 두 사람 집은 직선거리로 1㎞도 안 된다. 한 측근은 "金회장(김영완씨)이 검은색 가방 8개를 그랜저에 싣도록 지시한 뒤 차 키를 달라며 손수 운전했다. 한시간도 안 돼 돌아오는 것을 보니 그리 먼 곳에 가지는 않았던 것 같다"고 전했다. "1999년 權씨가 이웃으로 이사온 뒤 金씨가 權씨 집을 자주 방문했으며 2000년 무렵엔 더 잦았다"는 증언도 있다.

金씨의 다른 측근은 "2000년 봄 괴박스가 들어온 뒤 金씨의 수상한 외출이 잦아졌다"고 기억했다. 운전기사를 부르지 않고 직접 차를 몰고 나가는 경우가 많았다는 것이다. 그 때마다 가로.세로 30㎝ 정도 크기의 검은 색 가방을 여러개 갖고 나갔고, 귀가할 때는 늘 빈 손이었다는 게 측근들의 전언이다.

당시 金씨의 한 운전기사는 "서울 서대문구 독립문 네거리 부근 아파트와 경기도 파주 고택(古宅) 등지에서 서너개의 검은색 가방을 누군가에게 전달했다"고 증언했다.

평소 보안 의식이 철저한 것으로 알려진 金씨는 현대 비자금과 관련한 사실이 외부로 새어나가지 않도록 더욱 조심했다고 한다. 이 무렵 金씨는 운전기사들을 자주 교체했고, 직원들에게 입조심을 누누이 강조했다. 그러나 한 전직 운전기사에 의해 '金씨가 거액의 비자금을 관리한다'는 입소문이 퍼졌고, 결국 지난해 3월 떼강도 사건의 빌미가 되기도 했다.

이철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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