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되묻고 싶다" 또 등장한 슈틸리케의 유체이탈 화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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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배의 책임을 짊어지지 않으려하는 슈틸리케 감독의 태도가 논란을 낳고 있다. [일간스포츠]

패배의 책임을 짊어지지 않으려하는 슈틸리케 감독의 태도가 논란을 낳고 있다. [일간스포츠]

"중국이 스리톱 전술을 가동하는 상황에서 내가 포백 이외에 어떤 전술로 나갔어야 할 지 되묻고 싶다."

울리 슈틸리케 축구대표팀 감독(69·독일)이 패배의 책임을 회피하는 듯한 발언에 대해 논란이 커지고 있다. 슈틸리케 감독이 이른바 유체이탈 화법(자신의 잘못을 제3자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듯한 입장으로 표현하는 것)으로 구설수를 불러온 건 지난해 이란전 원정에 이어 두 번째다.

슈틸리케 감독이 이끄는 한국은 23일 중국 창사 허룽스타디움에서 열린 2018 러시아월드컵 아시아지역 최종예선 6차전 중국과의 원정경기에서 0-1로 졌다. 한 수 아래로 여긴 중국 수비진을 무너뜨리지 못한 채 끌려다녔고, 전반 34분 위다바오(베이징 궈안)에게 한 골을 내준 이후에도 단조로운 전술로 일관하다 패배했다.

중국전 패배로 한국은 9회 연속 월드컵 본선행 도전에 제동이 걸렸다. 승점을 추가하지 못하면서 6경기 3승1무2패, 승점 10점에 발이 묶였다. 한국이 자력으로 월드컵 본선행 티켓을 확보하기 위해 필요한 승점은 22점 안팎으로 예상된다. 남은 4경기를 모두 이겨야 가능한 점수다.

슈틸리케 감독은 경기 후 기자회견에서 날선 취재진의 질문을 유체이탈 화법으로 받아쳤다. '전술이 단조롭다'는 지적에 "그럼 어떻게 해야 하느냐"며 오히려 되물어 취재진을 당황시켰다.

'월드컵 최종예선 원정경기에서 1무2패에 그치고 있다'는 지적에 대해서도 "원정에서 상황이 좋지 않은 건 홈 경기와 분위기가 다르기 때문"이라면서 "상대팀 팬들로 가득찬 상황에서 (선수들이) 좀 더 긴장하거나 자신감이 떨어진 결과일 수 있다"는 답을 내놓았다. 부진의 책임을 은근히 선수들에게 미루는 듯한 뉘앙스였다.

아울러 "기록은 나와 있기 때문에 인정할 수 밖에 없다. 특히나 원정에서 무득점인 게 치명적일 수 있다"며 강 건너 불 구경하는 듯한 발언도 내놨다.

슈틸리케 감독은 지난해 이란과의 4차전(0-1) 패배 직후에도 "우리에게 세바스티안 소리아(카타르) 같은 공격수가 없어서 졌다"며 선수 탓을 했다가 여론의 도마에 올랐다. 자신의 발언이 물의를 빚자 "공격수들이 소리아처럼 수비에도 적극 가담해주길 바란다는 뜻이 와전됐다"고 해명했지만 논란은 한동안 지속됐다.

향후 슈틸리케호의 월드컵 본선행 도전은 가시밭길이다. 오는 28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리는 시리아와의 홈 7차전에서 승리하지 못하면 본선 직행권인 조 2위 자리조차 지키기 힘들다.

리더는 승리의 영광 뿐만 아니라 패배의 책임도 담당하는 자리다. 자신에 대한 질책과 비난을 병사들의 몫으로 돌리는 장수를 위해 충성할 사람은 없다. 창사=송지훈 기자 milkym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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