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완씨는 '돈 세탁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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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완씨가 권노갑씨에게 건네진 현대 비자금의 세탁에도 관여한 것으로 알려져 '구 여권의 돈 세탁소'였다는 의혹을 더욱 짙게 풍기고 있다.

金씨는 2000년 4월 박지원 전 대통령 비서실장에게 건네졌다는 현대의 양도성 예금증서(CD) 1백50억원어치를 돈세탁한 전직 무기거래상으로 지난 3월 미국으로 건너가 행방을 감춘 상태다.

특히 權씨의 측근인 민주당 이훈평 의원이 12일 "(2000년 당시) 權씨가 金씨에게서 10억원을 빌렸다"고 말해 權씨와 金씨의 관계는 사건을 푸는 중요한 열쇠 중 하나가 됐다.

지금까지 드러난 사실을 종합하면 두 사람은 무기중개.비자금.돈세탁 과정 등을 통해 인연을 지속했다. 거액의 정치자금을 관리해야 할 위치에 있던 權씨로서는 돈세탁 분야에 밝고, 개인적 친분도 있는 그의 도움이 필요했을 것으로 보인다. 朴씨도 그런 점에서 金씨가 필요했던 것 같다.

權씨는 1991년 국정감사 때 미국 보잉사의 헬기 도입 문제를 질의하는 과정에서 당시 보잉사 한국 내 대리인이었던 金씨를 처음 알게 된 것으로 전해졌다. 이후 93년 국회 율곡사업 비리 청문회 때 국회의원과 증인으로 다시 만나 친분관계를 유지해 왔다.

김대중 정부 출범 이후인 99년 1년간의 일본생활을 청산하고 돌아온 權씨는 金씨와 더욱 가까워졌고 金씨에게 朴씨를 소개해 줬다는 후문이다. 金씨는 그렇게 알게 된 구 여권 거물들의 '사(私)금고'역할을 한 셈이다.

金씨는 실제 은행원 출신의 측근 두명을 통해 은행 지점 등을 드나들며 수시로 거액의 현금과 수표를 교환하고 다시 이를 채권으로 바꾸는 등의 고난도 자금 유통 기법을 이용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그의 측근 임모씨는 지난해 말부터 올 초까지 서울 명동 사채시장에서 자기앞수표로 국민주택채권을 50여억원어치나 사들였고, 사채업자 장모씨 역시 수시로 거액의 무기명 채권을 사들여 큰손으로 통했다. 그만큼 돈 관리에 '도사(道士)'급인 사람들을 거느렸던 그다.

金씨는 2000년 봄 50여개의 괴박스(본지 6월 30일자 8면)를 서울 압구정동 갤러리아백화점 뒤 공터에서 모처(현대 쪽으로 추정)에서 받아 집으로 실어나른 장본인이다. 그리고 검은 가방에 담아 여기저기 전달했다는 게 주변의 전언이다.

박스 안에 들어 있던 내용물이 현금이었고, 權씨 등 구 여권 핵심부의 심부름으로 후보들에게 총선 자금을 나눠줬을 것이라는 추측도 가능하다. 그때는 權씨가 金씨가 소유했던 평창동 빌라에 살던 때이기도 하다.

당초 김영삼 정부 인맥들과 절친했던 金씨는 이 같은 權씨와의 특수관계를 이용, 김대중 정부 고위층 인사들과도 친분을 맺고 유지한 것으로 전해진다. 무기거래 사업도 당초 알려진 것처럼 1993년에 그만둔 것이 아니라 김대중 정부가 들어선 뒤인 99년 8월까지 회사 이름을 바꿔 계속했으며, 상당히 큰 돈을 번 것으로 알려졌다.

윤창희.임장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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