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오젠거리 “유커 손님 끊겨” … 카페리는 승객 절반도 안 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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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중국 정부가 사드 보복 차원에서 지난달 2일 정한 한국 관광 금지 조치가 실제 효력이 생긴 첫날인 15일 중국인 관광객으로 가득했던 제주 바오젠 거리가 한산하다. [사진 최모란 기자]

중국 정부가 사드 보복 차원에서 지난달 2일 정한 한국 관광 금지 조치가 실제 효력이 생긴 첫날인 15일 중국인 관광객으로 가득했던 제주 바오젠 거리가 한산하다. [사진최모란 기자]

15일 오후 제주시 연동 바오젠(寶健) 거리의 액세서리 상점. 물건을 정리하던 주인 김모(39·여)씨는 “이렇게 장사가 안 되긴 처음”이라며 길게 한숨을 쉬었다. 김씨는 “요즘 하루에 손님 1~2명이 다녀가는데 중국인 매상은 제로 수준”이라고 말했다. 바오젠 거리는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로 중국인이 몰려왔던 제주도의 대표적 유커(遊客·중국인 관광객) 명소이지만 이날은 하루 종일 한산했다.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사드) 체계의 한반도 배치에 불만을 품은 중국이 ‘소비자의 날’인 15일을 기점으로 한국 단체관광을 전면 금지한 첫날이라서 그런지 거리는 평소보다 더 썰렁했다.

중국, 한국 단체관광 금지 첫날 #청주공항, 중국 정기노선 6개 중단 #인천항 국제여객터미널도 썰렁 #CC-TV 소비자고발, 한국산 안 다뤄 #일본 수입식품, 나이키 신발이 타깃 #중국, 사드 공세 속도조절 관측도

같은 날 오전 11시쯤 서울 소공동 롯데면세점에는 중국인 관광객이 보였다. 롯데면세점의 지난 1~14일 매출은 전년 동기보다 20% 늘었지만 12일 이후부터 매출 증가율이 10%대로 떨어졌다.

최가연 롯데면세점 대리는 “한국인과 동남아시아 고객 매출이 늘어 만회하고 있지만 중국인 방문객이 앞으로 사라지면 매출 타격이 클 것”이라고 말했다.

15일 이후부터 중국에서 유커의 한국행 관광상품 판매가 전면 금지되면서 유커로 붐볐던 유명 관광지와 면세점에 찬바람이 불고 있다. 중국인 단체관광객의 발길이 줄거나 끊기면서 업계에는 초비상이 걸렸다.

국내 최대 여행사인 하나투어를 통해 이날 입국한 중국 관광객은 단 2팀(51명)뿐이었다. 문자 그대로 ‘15일 이후’를 ‘16일부터’로 파악하고 일부 상품이 판매되는 바람에 두 팀이라도 건졌다고 한다. 정기윤 하나투어 총괄팀장은 “현재 남아 있는 중국인이 일정을 마치고 모두 출국하는 20일부터는 서울 명동 거리에서 중국인을 보기가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손님이 급감하자 항공사들은 중국 노선 운항을 일시 중단했다. 국제선 이용객의 98%가 중국인인 청주국제공항의 경우 이날부터 국제선 중국 정기 노선 8개 중 6개를 일시 중단했다.

중국 출장을 가기 위해 공항을 찾은 기업인 조규원(62)씨는 “중국 정부가 중국에 진출한 한국 중소기업에도 제재 수위를 높일까 걱정”이라고 말했다.

인천항 국제여객터미널 대합실 매표소(오른쪽) 앞도 썰렁하다. [사진 최충일 기자]

인천항 국제여객터미널 대합실 매표소(오른쪽) 앞도 썰렁하다. [사진최충일 기자]

한국과 중국을 오가는 카페리는 당장 손님 없이 화물만 싣고 운항할 판이다. 15일 이후 단체관광객 예약이 전혀 없기 때문이다. 전체 한·중 카페리 여객의 60% 이상을 담당해 온 인천항 국제여객터미널의 경우 이날 오전 입항한 카페리 2대가 승객 정원의 절반도 채우지 못했다.

중국 스다오(石島)항에서 들어온 3만4700t급 카페리(1500명)는 정원의 40.5%인 608명만 탑승했다. 웨이하이(威海)에서 들어온 2만6460t급 카페리(정원 731명)도 366명만 탔다. 전작 한·중카페리협회 전무이사는 “이달 들어 카페리를 타고 국내로 오기로 한 중국인 관광객 7만1000명이 일정을 취소했다”며 “15일 이후는 단체관광 예약이 전혀 없다”고 말했다.

이충기 경희대 관광학부 교수는 “사드 갈등이 풀리기 전까지는 중국에 치우쳤던 관광정책을 동남아와 일본 등지로 다변화하는 것밖엔 대안이 없다”고 했다.

한편 중국 ‘소비자 권익의 날’을 맞아 방영된 중국중앙방송(CC-TV)의 소비자 고발 프로그램 ‘3·15 완후이(晩會)’에서 한국 기업이나 상품은 고발 대상에서 제외됐다. 이로써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사드) 체계 배치에 대한 보복의 일환으로 한국 기업이나 소비재 상품을 다룰 것이란 우려가 해소됐다. 이날 한때 한국 화장품이 ‘완후이’의 표적이 될 것이란 소문이 돌아 해당 업체가 비상 대책회의를 여는 등 업계가 긴장하기도 했다. 하지만 실제 방송에서 문제점이 지적된 해외 상품은 일본산 수입식품과 미국산 나이키 신발이었다.

주중 대사관 관계자는 “중국 당국이 경찰 인력을 동원해 한국 교민 밀집지역이나 롯데마트 등에서 반한 시위 움직임을 사전에 차단하는 등 최근 들어 과도한 사드 보복을 자제하는 듯하다”며 “한국의 조기 대선과 다음달로 예정된 미·중 정상회담을 의식한 결과로 분석된다”고 말했다.

인천·제주·청주=최모란·최충일·최종권 기자,
이현택 기자, 베이징=신경진 특파원 mor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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