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영업자 너무 빨리 증가, 대책 마련 위해선 소득 파악이 먼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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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경준 통계청장 고용시장 진단 

“치솟는 실업률도 문제지만 자영업자가 확 늘어나는 구조가 더 심각하다. 자영업자의 가파른 증가세가 예사롭지 않다. 한국 고용시장이 가진 취약점을 그대로 담고 있어서다. 노출된 문제를 개선하지 않으면 어떤 대책을 내놔도 사회안전망 구축이나 고용시장 개선을 위해선 백약이 무효다.”

대부분 고용원 없는 1인 자영업자 #비금융권 대출 4년 새 75% 늘어 #직장인에 불리한 세금, 창업 부추겨

유경준(사진) 통계청장이 15일 2월 고용동향을 발표한 뒤 최근 고용흐름이 내포한 한국사회의 구조적 문제에 대한 진단을 내놨다. 그가 주목한 건 자영업자의 증가세다. 지난해 8월부터 증가세로 돌아서더니 10월부터 매달 10만명 이상 자영업자가 늘고 있다. 올 2월에는 21만3000명이나 늘었다. 특히 고용원이 없는 이른바 1인 자영업자 증가세가 심상찮다. 지난해 11월부터 매달 10만명 넘게 불어난다. 늘어나는 자영업자 대부분이 1인 자영업자라는 추정이 가능하다.이 기간 동안 취업자 수는 감소세를 이어오고 있다. 취업하지 못하자 구멍가게로 눈을 돌리고 있다는 얘기다. 유 청장은 “분석 결과 1인 자영업자는 대부분 수리업이나 개인 서비스업에 종사하는 영세자영업자로 확인됐다”라고 말했다.

이들은 벼랑 끝에 서 있다. 지난 5년 치 통계청의 가계금융복지조사 마이크로데이터에 따르면 1인 자영업자의 비은행권 대출액이 2012년 1859만원에서 지난해 3259만원으로 무려 75%나 늘었다.

가뜩이나 이자율이 높은 비은행권 대출인데 금리마저 인상되면 한국 경제에 시한폭탄이 될 가능성이 크다.

유 청장은 이처럼 자영업자가 급속하게 증가하는 근본적인 이유를 “투명하지 못한 조세제도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그는 “2015년 현재 소득세를 납부하는 취업자는 전체의 52%에 불과하다”며 “투명성과 형평성이 결여된 과세제도가 문제의 원천”이라고 말했다.

자영업자 비율을 고려한 조세회피지수가 한국은 5.6이다. 한국의 자영업자 비율은 28.4%다. 한국을 제외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의 평균 조세회피지수는 2.8이고, 자영업자 비율은 14.7%다. 유 청장은 “조세회피지수가 높을수록 자영업으로 눈을 돌리게 된다”고 지적했다. 유리지갑인 직장인과 달리 소득이 노출되지 않는 점을 노린다는 뜻이다.

유 청장은 “세금제도가 허술하다보니 사회안전망도 덩달아 제 기능을 못하거나 취약해질 수밖에 없고, 이게 각종 사회보장책의 사각지대를 형성하게 된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통계청의 경제활동부가조사에 따르면 고용보험 사각지대에 놓은 취업자는 375만 명에 달하고, 국민연금 사각지대에 있는 사람도 277만 명이다.

유 청장은 “복지제도가 확대되고 있지만 저소득층 소득 파악에 한계가 있어 보조금 지급이 제대로 집행되는 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이 때문에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 정부에서 자영업자 소득파악과 사회보험료 적용·징수 업무를 통합하려 징수공단을 설립하려 했지만 무산됐다. 공단 통폐합을 우려한 공기업 노조의 저항 때문이다.

그래서 “소득의 양극화와 일자리 창출, 복지제도 확대와 효율성 제고를 위해서는 소득 파악 작업부터 제대로 해야 한다”고 유 청장은 진단했다. 그는 “증세 논의에 앞서 소득 파악 작업부터 정비해야 한다. 저소득층의 소득 파악도 제대로 되지 않은 상태에서 기본소득 논의를 한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라고 덧붙였다.

유 청장은 과세의 기본이 되는 소득파악을 위한 방법으로 “지난 정부 때처럼 별도의 기구를 만들며 갈등을 유발할 필요는 없다”며 “통계청과 국세청의 빅데이터로 분석하고 이를 기반으로 과세와 사회안전망의 적정성 등을 따지는 작업부터 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기찬 고용노동선임기자 wols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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