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의수다] 고교논술방-역사 서술에 대한 평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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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학년도 대입 정시모집에서 어려운 논술 출제를 둘러싸고 논란이 일었다. 서울대의 경우 경쟁의 공정성과 경쟁 결과의 정당성에 대한 논술을 요구하면서 지금까지와는 달리 무려 7개의 지문을 냈다.사진은 지난달 16일 치러진 서울대 정시모집 논술시험 모습. 오종택 기자 <jongtak@joongang.co.kr>

*** 학생 글 - 박재우 <중화고 2>

[1] 역사를 흔히 '현재를 반성하기 위한 과거의 거울'이라고 한다. 그것은 역사가 이미 흘러간 시간의 흐름 위에 지금 인간이 살아가고 있는 현재를 투영하고, 또한 그 위에 미래를 그려가게 하는 매개체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성질을 흔히 '역사의 연속성'이라고 말한다. 이러한 역사의 연속성은 오로지 인간 스스로의 행위에 의하여 현실화하는데, 이때의 인간의 행위가 바로 역사 서술이다. 그런데 인간은 하나의 정의로 설명할 수 없는 존재이기에 역사 서술의 방식 또한 그 어투와 형식, 관점에 따라 다양화하여 왔다. 흔히 알려진 큰 두 가지 방식이 바로 (가)에 드러나 있다. 오로지 객관적인 사실만을 그 어떤 주관도 없이 제시하는 역사관, 그리고 역사가가 미리 생각해 둔 바를 역사 서술 내용에 내재시키는 방법. 후자는 역사를 '왜곡'하라는 것이 아니라, 역사가 개인의 역사관을 존중하자는 의미이다. 이들 두 방식은 역사 서술의 다양성을 인정하느냐, 후세인이 역사를 들추어볼 때 받을 느낌을 조정해도 좋으냐 하는 문제로 판이하게 대립하고 있다. 그러나 이 시점에서 둘 중 어느 쪽이 옳으냐를 묻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그렇다면 그러한 역사관 간 격차를 어떻게 조절해서 알맞은 역사 서술을 하느냐가 관건이 될 것이다.

[2] (다)의 관점은 (가)의 실증주의적 역사관을 배척하고 있다. "우리가 기억하고 재현하기로 선택한 것을 전달한다"는 이 관점은 역사가 후세를 계도하는 일차적 수단이라는 데서 기인한다. 학생들과 젊은 세대가 과거를 돌아보고 반성하고 미래를 성취하도록 하는 것이 이 관점의 신념이다. 이는 역사 서술에 있어서 대단히 중요한 자세다. '잘못을 반성하게 만드는 역사'는 역사가의 혼이 녹아 있는 역사 서술을 살리는 동시에 역사 왜곡을 역사가 스스로 막도록 하고, 또한 그 특성상 학생들이 그러한 역사 속의 문제를 검사하고 반성하며 여러 대조와 비교로 국제적인 관점까지 키우도록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무미건조한 역사 서술이 결코 실현할 수 없는 가치다.

[3] (나)는 그래드그라인드 씨의 '삶에서 바람직한 것은 사실일 뿐'이라는 견해에 동조하는 역사 서술이다. (나)는 당시의 정치적 상황을 그대로 드러내는 데에만 초점을 맞춰 '인간의 역사'로서의 얼을 잃어버렸다. 거기다 당시 구미 열강들과 일본의 행위에 정당성이 있는가에는 초점을 두지 않아 후세가 그 역사에서 아무런 교훈도 느낄 수 없게 해 버렸다. 도리어 열강과 일본의 행위에 무의식적인 동조를 할 수도 있게 되었다. '당시 상황이 그럴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이것은 역사가 인간을 발전시킬 발판이 아니라 단순히 '예전에 있었던 일'이 되도록 한 불의(不義)한 행위이다. '과학으로서의 역사'라는 슬로건이 역사를 단순 지식의 차원으로 떨어뜨려 '죽은 것'으로 만들어버린 전례를 간과한 것이다.

[4] 역사는 죽어서는 안 된다. 민족주의 사관(史觀)을 배제하더라도 역사는 그 자체로 얼이 담겨 있어야 한다. 역사는 현재에 미래를 설계할 때 가장 가깝고 좋은 교훈이며 가장 확실한 발판이다. [바꿀 수 없는 길이기 때문이다. → 빼는 편이 좋음: 첨삭자] 따라서 역사는 그 지위에 걸맞은 역할을 수행해야만 하며, 그 역할은 역사의 연속성을 바람직하게 이끌어가는 것이다. 따라서 (나)와 같은 역사 서술은 행해지지 않아야 한다. 후세를 위한 최소한의 도덕성이 결여된 (나)의 역사는 바로 예의 '죽은 지식'이기 때문이다. (다)가 말하듯, 역사서가 현대를 더 정의롭게 하는 데 기여하는 것은 지상 명령인 것이다.

*** 총평.첨삭

내용 이해 잘했으나 분석·논증 다소 미흡

전반적으로 박재우 학생은 내용 이해는 훌륭하나 지문을 분석하고 자기 생각을 논증하는 데서는 부족함을 보였다.

우선 서론에서는 바람직한 역사 서술이 무엇인지에 대해 적절한 자기 의견을 개진했다. 사실을 존중하는 태도와 역사를 보는 관점을 '조절'해야 한다고 주장한 것이다. 이 점은 카의 역사관과도 일맥상통한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1]이 더 짧았면 좋았겠다.

한편 미래 지향적인 관점이 결여된 역사를 '죽은 지식'으로 보아 (나)의 서술이 그러하다고 평가한 부분은 출제 의도에 부합한다.

그러나 주장에 비해 논거가 부족한 점은 아쉽다. 알고 있는 지식을 동원해 (나)의 어떤 부분이 틀렸는지, 즉 잘못된 역사관이 사실의 왜곡을 낳았는지 논증했다면 좋았을 것이다.

나아가 [2]와 [3]에서 제시문의 내용을 요약 정리하는 데 치중한 나머지 자신의 의견을 개진하지 못했으며, 역사 교과서의 특수성을 충분히 서술하지도 못했다. 구성과 분량 안배에 조금 더 신경을 썼으면 좋았겠다.

각 문장의 길이가 너무 길어 표현이 어색해지고 단숨에 이해하기도 어려운데, 누가 읽더라도 이런 점들은 약점으로 작용할 것이다. 문장을 간결하게 쓰는 연습을 하면 좋겠다.

김재인 유웨이중앙교육 오케이로직논술 대표강사

*** 제시문 해설

출전: (가) E. H. 카, '역사란 무엇인가'

(나) '새 역사를 만드는 모임' 편찬 역사 교과서

(다) 성균관대 제1회 논술경시대회(2001년)에서

역사를 배우는 목적은 과거의 사례를 통해 미래 사회를 더 민주적이고 평화롭고 정의롭게 만드는 방법을 알기 위함이다. 중요한 것은 과거의 사실을 지식 차원에서 습득하는 일이 아니라 미래의 세계를 만들어 갈 바른 방향을 알아가고 실천하는 일이다.

따라서 역사 서술은 사실을 무시해서도 안 되지만 올바른 관점을 상실해서도 안 된다. 역사는 가치의 문제인 것이다.

하물며 역사 교과서 왜곡은 보통의 역사 왜곡보다 훨씬 심각한 차원의 문제이다. 일반적인 역사 서술이 학자나 전문가 또는 성인을 독자로 한다면 역사 교과서는 미래 세대인 청소년을 독자로 한다.

교과서는 첫 입문서라는 점에서, 왜곡된 교과서를 통해서는 왜곡된 가치관의 집단 학습이 강제될 수밖에 없다. 이번 문제에서는 이 두 가지 점이 고루 다뤄져야 했으며, (나)가 사실 중심의 서술에 그친 것이 아니라 잘못된 관점에서 비롯된 왜곡된 사실 서술이라는 점까지 논증하는 것이 필요했다.

가령 마지막 문장은 '찬반양론'이나 '반대파의 일부로부터 심한 저항'과 같은 표현을 통해 당시의 상황을 일본에 유리하게 보이도록 사실을 의도적으로 뒤틀었다는 점이 분명하다.

이런 서술을 낳은 관점은 21세기 현재의 동아시아 국제관계를 원만히 풀어가는 데 장애가 되고 있으며 독일이 패전 후 보인 모습과 극적인 대비를 보이고 있다.

*** 다음 주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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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제:다음 제시문(cafe.joins.com/suda)은 학문을 하는 방법에 대한 논의의 일부이다. 이 글들의 관점을 비교 분석하고, 학문하는 사람이 지녀야 할 태도에 대하여 자신의 견해를 논술하시오.(1600자 내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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