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 개방 두번 우는 농촌 "논 헐값에도 안 팔려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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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천덕꾸러기로 전락한 논값이 갈수록 떨어지고 있다. 부산시 강서구 생곡동의 논 앞에서 한 할아버지가 논을 바라보고 있다. 송봉근 기자

40여 가구가 사는 경남 거창군 남하면 지산 마을. 세 집이 각각 800평짜리 논을 평당 3만원에 지난해 가을 내놓았으나 이제껏 사겠다는 사람이 없다. 이 마을 논들은 2~3년 전 평당 4만~5만원에 거래됐으나 지금은 매기가 끊겨 값이 크게 떨어졌다. 이장 박종범(48)씨는 "논을 팔려는 사람은 많고 사려는 사람은 없으니 논값이 떨어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말했다.

3~4년 전 평당 3만2000~3만4000원이었던 전남 나주시 공산면의 논은 지난해 초 2만5000원 안팎으로 떨어지더니 올해는 거래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 전남 곡성군 오곡면 면사무소 직원 박홍규(45)씨는 "논을 가진 이들이 마음 같아서는 죄다 처분하고 싶어도 사려는 사람이 없고, 시세가 워낙 안 좋아 할 수 없이 가지고 있는 형편"이라고 밝혔다.

쌀값이 떨어져 벼농사의 수지가 악화되고 쌀 수입 등으로 벼농사의 전망이 어두워지면서 논의 가치가 급락하고 있다. 이에 따라 논 가격뿐 아니라 논 주인들이 영세 농민들에게 빌려 주고 받는 임대료 또한 큰 폭으로 낮아졌다. 예전과 달리 지주들이 소작농들에게 농사를 지어달라며 사정하기도 한다.

전북 익산시 목천동 고잔들에 1200평짜리 논 4필지를 가지고 있는 오순남(70)씨. 그는 지난해까지 다른 농민에게 논을 빌려주며 필지당 쌀 10가마씩 총 40가마를 연초에 선불로 받았다. 그러나 올해는 수확 후에 받기로 했고, 절반씩 나눠 갖던 쌀 소득 보전 직불제의 보조금(100여만원 예상)도 농민에게 모두 주기로 했다. 농사짓던 사람이 쌀값 하락 등으로 수지가 안 맞는다며 그만 짓겠다고 하고, 다른 농민도 나서지 않았기 때문이다. 오씨는 "후불에 따른 이자 손해와 직불제 보조금 포기, 쌀값 폭락에 따른 손실까지 합치면 임대 수입이 이만저만 줄어든 게 아니다"고 말했다.

민간의 논 거래 및 임대가 잘 안 되면서 한국농촌공사를 통해 팔아 치우거나 세놓는 논이 늘어났다. 한국농촌공사 농지은행사업처에 따르면 지난해 전업.은퇴 농가 등으로부터 매입해 쌀 전업농에게 매도한 논은 6014건 3951㏊. 2004년 3466건 1993㏊보다 거의 배(면적 기준)로 늘었다.

◆ 논 가격 및 임대료 하락 원인=지난해부터 쌀 수매제 폐지로 쌀값이 떨어져 벼농사 수지가 더 나빠지자 손수 농사를 짓는 사람이나 임대 농민 모두 벼농사에서 손을 떼려 하고 있다.

전남도에 따르면 지난달 15일 농민들이 미곡종합처리장 등에 벼를 넘기는 가격(40㎏ 기준)의 전국 평균값이 4만4828원으로 지난해 같은 시기의 5만2768원보다 15%나 떨어졌다.

3월부터 이뤄질 수입 쌀 시판을 앞두고 불안감도 한몫하고 있다. 올해 수입량은 4만5000여t으로 연간 쌀 예상 소비량의 1%나 된다. 농촌에 노령자가 많아지면서 농사를 남에게 맡기려는 사람은 느는 반면 맡을 사람은 없는 것도 논 가격 및 임대료를 떨어뜨리고 있다.

◆ "논을 다른 용도로 활용"=농림부는 논을 비롯한 농지를 다른 용도로 활용하기 쉽게 하고 농촌지역에 도시자본을 끌어들이기 위해 농지 관련 규제를 대폭 완화했다. 1월 22일 발효된 새 농지법 시행령에 따라 농지 전용 허가를 받을 때 예전에는 ㎡당 1만300~2만1900원을 물어야 했으나 앞으로는 농지 보전 부담금을 개별공시지가의 30%만 내면 된다.

또 농지의 취득 및 이용이 간단해졌다. 4일 이내였던 농지취득 자격증명 발급신청 처리기간이 주말.체험 영농을 위한 농지의 취득 등 농업경영계획서 작성이 필요하지 않은 경우에는 2일 이내로 단축됐다. 축사 설치에 관한 농지전용 규제도 대폭 완화, 농업진흥지역 밖에서는 축종에 관계없이 3ha까지 신고로 전용이 가능하다. 진흥지역 안에서는 3ha까지 농지보전 부담금을 감면받고 3ha 초과 면적에 대해서는 50%를 부과한다.

김종훈 농림부 농지과장은 "농업진흥지역 관리제도도 대폭 보완, 진흥지역 안에 설치할 수 있는 농산물 산지 유통시설의 규모가 1㏊에서 3㏊로 커지고, 농업생산자단체의 판매시설도 0.3㏊ 미만까지 허용된다"고 밝혔다.

이해석.김상진.홍권삼 기자<lhsaa@joongang.co.kr>
사진=송봉근 기자 <bks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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