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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드 대응, 숨죽인 기업 침묵하는 정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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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장주영 기자 중앙일보 기자
장주영산업부 기자

장주영산업부 기자

“브랜드명은 절대 나가면 안 돼요.”

8일 한 기업 관계자는 간곡하게 부탁을 했다.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사드) 체계 배치를 두고 중국이 전방위적인 보복에 나선 데 대한 대책을 물었을 때다. 그는 “‘우리 기업이 이만한 피해를 당했노라’고 나서는 순간 더 큰 피해를 당할 수 있다”며 “중국 현지 네티즌과 언론이 한국 언론을 모니터링하고 있다고 들었다”고 말했다.

비단 이 기업뿐이랴. 집중포화를 당하고 있는 롯데의 경우 입이 있어도 말을 못한다. 사드 부지 제공의 원흉(?)으로 중국인에게 찍혀도 단단히 찍혔지만 ‘당해도 안 당한 듯’ 포커페이스를 유지할 뿐이다. 롯데는 이날까지 중국 내 99개 롯데마트 가운데 55곳을 영업정지당했다.

침묵을 지키려는 국내와 달리 현지 사정은 긴박하게 돌아간다. 전날까지만 해도 ‘아무 일이 없다’던 중국 웨이하이의 한 기업 주재원은 “롯데백화점 앞에서 수백 명이 모여서 불매운동 시위를 펼쳤다”며 “중국 정부가 데모를 직접 주도하진 않지만 사실상 방치하면서 노골적으로 압박하는 것 같다”고 전했다.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현재 분위기로 봐서 사드 보복은 쉽게 사그라들 것 같지 않다. 사드 배치 단계가 진행될수록 보복도 그에 맞춰 강도를 높일지 모른다. 국내 관광산업과 중국 현지 진출 국내 기업의 피해가 그만큼 커져간다는 뜻이다. 손실이 수조원에 이를 것이라는 전망까지 나오면서 기업들은 살얼음판을 걷는 심정으로 사태를 예의주시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절박함을 정부는 잘 헤아리지 못하는 것 같다. 이날 유일호 경제부총리는 경제관계장관회의에서 “최근 중국의 경제 조치들에 대해 사드와 연관된 보복이라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일련의 상황을 예의주시하면서 우리 기업과 국민의 피해를 최소화하겠다. 중국과 경제·외교적 노력을 강화하겠다”는 말을 덧붙이긴 했지만 기업인들에겐 앞의 말이 더 뇌리에 남았다. 과도한 위기의식을 조장하지 않기 위한 ‘선의의 거짓말’이라 믿고 싶지만 정부만 쳐다보던 기업의 입장에서는 허탈할 수밖에 없다. 유 부총리의 말을 전해 들은 한 기업인은 “속 시원히 말할 수 없는 사정이 있다면 차라리 그런 언급을 하지 않고 ‘외교적 노력을 다하겠다’는 이야기만 하는 게 낫지 않았겠냐”고 했다.

이참에 중국 의존적인 사업 구조를 바꾸고 시장 다변화로 나가야 한다는 근본적인 해결책은 백번 옳은 이야기다. 하지만 그게 어디 하루아침에 될 일인가. 지금 이 급박한 위기에 기업이 기댈 곳은 그래도 정부뿐이다. 외교적 노력을 기울이는 동시에 ‘정부가 기업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확신과 믿음을 주길 기업들은 바라고 있다.

장주영 산업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