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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중앙포럼

과학, 신전에서 광장으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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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황우석 사단의 연구는 한동안 신전(神殿)에 있었다. 사제는 몇몇 과학자.기술관료 등이었다. 신전 열쇠를 쥐고 있었다. 그들은 독점적으로 얻은 정보를 바깥세상에 뉴스 형식으로 설파하지 않았다. 신화로만 말해줬다. "과학기술은 온전히 순수하고 객관적인 전문지식이다. 믿고 따르라." 신화의 요지였다. 정말 중요한지, 맞기는 맞는지, 대중이 진실을 따지고 나오기 어려운 구조였다. 그러다 일이 터지고 만 것이다.

순수성과 객관성-. 과학기술.과학자는 독점적 지위를 늘 인정받을 수 있을까. 과학사는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과학기술의 발전은 연구자의 순수한 열정이자, 동시에 사회적 합의의 산물이다. 18세기까지 서양에서 과학기술의 후원자는 계몽군주.귀족이었다. 과학자는 궁궐.살롱을 드나들며 후원자와 교감해야 했다. 그 시절에는 연구자의 열정이 좀 더 통했다. 하지만 19세기 말 이후 '과학기술이 돈이요, 무기'라는 의식이 퍼지면서 상황은 달라졌다. 자본주의 체제에서 후원자의 얼굴은 군주.귀족에서 국가.기업으로 바뀌었다. 특히 나라의 뭉칫돈은 그 사회 과학기술의 방향.속도.내용을 정한다. 사회적 합의가 없으면 대규모 과학기술 연구 사업은 사실상 불가능한 상황이다.

올해 우리의 연구개발 예산은 9조원. 절대 규모는 아직 미국의 16분의 1, 일본의 3분의 1 수준이다. 하지만 증가 속도만큼은 빠르다. 1998년 3조원, 2002년 6조원. 올해는 지난해보다 15%나 늘었다. 국방.복지의 증가율보다 높았다. 지구촌에서 보기 드문 증가세다. 국내총생산(GDP)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0.82%(2004년 기준). 미국.프랑스보다는 조금 낮지만 일본.독일.영국보다 높다. 연구개발 예산은 더 늘려가야 한다. 하지만 적다고 불평할 때도 지났다. 수백억원 이상의 예산이 들어가는 대형 연구개발사업 수십 개가 동시에 돌아가고 있다.

연구 예산은 국민의 호주머니에서 나간다. 과학자라도 당연히 사회의 통제와 검증을 받아야 한다. 기획.진행.평가 과정에서 공공성이 확보돼야 한다. 성과 또한 특정집단이 아닌 세금을 낸 국민에게 골고루 돌아가야 마땅하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다른 사업에 비해 과학기술 연구 사업을 허술하게 감시해 왔다. 정부는 물론이고 국민의 편에 서서 나랏돈의 씀씀이를 살펴야 할 국회에서도 그랬다. "과학연구 사업의 심의는 대충 넘어가는 분위기다. 전문성이 장벽이다. 관련 예산은 커지는데 우리도 걱정이다." (국회 과학기술정보위 관계자 J씨)

과학기술은 사회의 통제보다는 극소수 전문가.권력의 손짓에 따라 움직일 가능성이 크다. 이를 방치하면 자원 배분이 뒤틀린다. 특정집단이 사회의 기대를 저버리고 사익을 좇을 수도 있다. 이를 바로잡아야 사회와 과학은 함께 간다. 현대의 과학기술이 있어야 할 곳은 신전이 아니다. 광장이다. 과학자.기술관료 등이 일반 시민과 만나 입을 맞추는 곳이다. 그런 접촉이 바로 과학기술 발달의 추진력이 된다. 황우석 쇼크는 '옐로 카드'다. 폐쇄적으로 진행돼 왔던 과학기술 연구 풍토에 대한 경고장이다. '레드 카드'를 받기 전에 우리는 소중한 교훈을 얻은 것이다.

이규연 탐사기획부문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