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선거가 있게 하자|정치유세 가로 막는 폭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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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대권주자들의 지방유세가 본격화되면서 유세장의 폭력사태가 잇따라 일어나고 있다.
어느 정치 집회건 지지자가 있으면 반대자도 있게 마련이지만 이번 경우는 정치적 반감이나 적대감의 표현일뿐 아니라 지역감정까지 얽혀 있다는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그동안의 극단적인 갈등이나 정치적 감정을 염두에 두면 어느 정도의 소란사태는 예상되는 일이기는 했다. 공격 대상이 지금까지는 집권당의 후보나 유신시대의 주역이지만 앞으로 야당의 김영삼총재나 김대중고문이 각기 광주와 부산에서 비슷한 곤욕을 치르지 말라는 법도 없을 것 같다.
폭력으로 집회를 방해하는 쪽에서도 나름대로 할 말은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무슨 명분을 대도 폭력이 정당화될 수 없다.
지금 우리는 민주화 도정에 들어선 것을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 민주주의는 대화와 설득을 통해 잡다한 이견을 통합하고 여과하는 과정이지 감정과 힘을 갖고 일방적인 의사를 강요하는 제도는 아니다.
설사 어떤 정치인에게 대단한 과오가 있었다손 치더라도 그에 대한 심판이나 응징은 투표를 통해 한다는 것이 바로 민주주의다. 이성보다 감정을, 법보다 주먹을 앞세운다면 그 자체가 권위주의적 발상이며 민주주의에 역행하는 행위가 되고 만다.
한때 양극 세력의 충돌이 빚어낼지도 모른다고 하던 위기설은 일단 가라앉았다. 선거가 있겠느냐고 우려하는 사람은 이제는 없다.
그러나 정치집회의 자유로운 분위기가 이같은 폭력행위로 흐려지면 새로운 각도에서 과연 선거가 치러지겠느냐는 우려가 제기될 수도 있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하긴 달걀이나 토마토 세례라면 선진국에서도 흔히 있는 일이고 정치집회의 「양념」으로 대범하게 치부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런 행위가 차츰 정도를 더해 가면 어디까지 확산될지 아무도 장담을 못하게 된다.
가뜩이나 증오와 한의 감정이 뒤범벅된 정치풍토에다 대권주자들의 출신지 때문에 은근히 지역감정을 부추기고 있는 상황이 아닌가.
정치집회를 폭력으로 방해하는 행위가 『있을 수 있는 일』이라든지, 『정치행사의 애교』쯤으로 관용되다 보면 차츰 격렬해져 마침내 후보자에 따라 어떤 특정지역에서는 유세도 할 수 없는 지경이 벌어질 수도 있다.
이건 극단적인 상상이고 있어서는 안될 일이지만 불순세력이 선거를 방해하기 위한 목적을 갖고 어떤 불상사를 일으킬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다.
어떤 일이 있어도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서 페어 플레이를 통해 선거를 치러야 한다는 것은 절대 대다수 국민의 여망이며 지상과제인 것이다.
그러려면 당국의 후보및 후보예상자에 대한 신변안전 대책 못지 않게 국민들 스스로가 투표를 통해 결판낸다는 자세가 요구된다. 폭력이나 감정이 아니라 이성과 선거를 통한 반대를 해야만 민주주의는 비로소 정착의 기틀을 다지게 되는 것이다.
거듭 강조하거니와 자유롭고 명랑한 분위기 속에서 선거를 치르기 위해서는 정치적 폭력행위가 어떤 이유로건 용납되어서는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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