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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졸실업」 10만명 넘었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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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취업의 계절이다.
고졸· 대졸, 그리고 대학원 졸업에 이르기까지 40만명을 훨씬넘는 젊은 일꾼들이 올해도 사회진출의 첫 관문 앞에 몰려 각축의 경쟁을 벌인다.
으스스한 날씨마냥 불안하고 초조한 표정으로 취업 창구에 늘어선 젊은 구직자들의 강사진을 보면 한편으로는 대견스럽고 또 한편으로는 너무 안쓰럽다.
대견스러움은 어찌됐건 이런 양질의 인력을 지속적으로 배출해 낼수 있는 우리사회 저력의 확인에서 솟아난다. 그러나 그들에게 만족할만한 일자리를 마련해줄 수 없는 고용능력의 한계를 생각하면 안쓰려움이 더 커지는 것이다.
구직난은 어제오늘의 일이아닌 우리 사회의 해묵은 숙제의 하나다.
그렇지만 80년대 들면서 그것은 새로운 양상으로 또 다른 성격의 심각한 과제로 제기돼 있다.
이른바 「대졸 실업」으로 일컬어지는 고학력자의 취업난 가중현상이다.
80년 교육개혁후 대학정원이 크게 늘어나면서 이들이 졸업하는 85년부터 그만큼 많은 대졸인력이 배출돼 고학력 실업이 표면화하기 시작했다. 그 누적현상은 올해 더욱 심화되는 추세다.
올해 대졸 예정자는 자그마치 16만여명.
이 가운데서 일자리를 얻을 수 있는 숫자는 중소기업까지 포함해도 고작 6만여명에 불과하다.
군입대· 대학원 진학을 뺀 순수취업희망자를 13만5천여명으로 잡더라도 7만5천여명이 남아돈다.
거기다 이미 졸업하고도 일자리를 못 잡은 5만여명을 포함하면 적어도 12만명을 넘는 대졸실업자를 우리 사회가 안게 되리라는 전망이다.
10만명을 훨씬 넘는 대졸 실업자는 일찌기 없던 일이며 결코 심상한 문제가 아니다.
그러나 보다 심각한 것은 이같은 현상이 당분간 해소될 전망이 없다는 점이다.
이는 고학력 실업현상이 우리 사회 여러 요인이 구조적으로 얽혀 나타난 결과이기 때문이다.
크게는 6·25 전쟁후 60년대초까지 계속된 10여년간의 「아기풍년」을 들 수 있다. 이 기간에 대어난 어린이들이 성년에 접어들면서 취업인구의 절대과잉현상으로 나타났다. 여기다 장기적인 인력수급정책의 부재 속에 사회의 교육 수요와 경제의 인력 수요가 어긋난데서 사태는 더욱 악화됐다.
전통적인 「인문」 선호 경향에 따라 어문· 사회·경상·법정계열정원을 늘려온결과 인문계 졸업생은 넘치는 반면 첨단기술분야를 비롯한 자연계열에선 인력이 모자라 아우성을 치고 있는 것이 바로 그런 증거다.
또 대졸 취업난과는 대조적으로 생산직 근로자는 갈수록 구하기 어러워지는 것도 인력수급의 불균형을 말해주는 현상의 하나다.
당장 발등의 불이면서도 단기간에 해결이 어려운 이 「대졸 실업」의 난제를 어떻게 풀 것인가.
전국을 열풍으로 휘덮어가는 대통령선거에서 대권신탁 선택에 못지 않게 중대한 현안이 아닐 수 없다.
물론 장기적으로 보면 이들 대졸자들은 보다 대우가 낮은 직역이나 직급으로 하향 이동해 일자리를 잡거나 또는 불완전 취업상태에 머무르다 자영사업등으로 돌파구를 찾을 수밖에 없다.
그것은 산업전반의 수준향상일수도 있으나 그보다 자원활용의 엄청난 비경제로 폐단이 더 크다.
「주부」를 길러내기 위해 대학4년의 교육 투자로 해마다 수많은 여학사를 배출해내고 있는 우리 사회의 교육열을 반드시 긍정적으로 볼 수 있을 것인가.
고등교육을 받은 인재가 갈곳이없는 절박한 상황에서 자신의 취향과 격에도 맞지않는 임시 일자리에 매달릴 수밖에 없다면 국력의 낭비는 고사하고 그들이 갖는 좌절감과 울분이 어떠하겠는가.
젊은 세대의 좌절감과 불만은 취업같은 구직차원에 한정되지 않을 것이다.
이들의 누적된 불만이 민주화의 역사적 전환기에 어떤 양상으로 분출해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될시 한번쯤 헤아려보아야 한다.
인력수급 조절은 통상 10년, 최소한 5년을 내다보아야 한다. 그런 점에서 오늘의 상황는 적어도 10년전에 그 대책을 강구했어야할 것을 못한데서 빚어진 것이다.
지금처럼 막연히 「연7% 경제성장으로 신규고용 충족」을 내세우는 정책만으로는 10년후에도 오늘의 상황이 계속되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다.
지금이라도 장래에 대비한 보다 과학적이고 실효성 있는 인력수급대책이 마련돼 제도교육 과 연계되어 집행돼야 한다.
단기적으론 넘치는 고급인력의 활용무대를 국내에서만 찾을 것이 아니라 제3세계 저개발국가들에 대한 인력지원의 방법으로 시야를 넓혀 활용하는 방안도 검토해 볼만하다.
어느 나라건 오늘날 집단이민을 받아들이는 나라는 없으나 경제개발과 같은 국제협력을 통한 인력 진출의 문은 아직도 무한한 가능성으로 열려있다. 정부차원보다 사회· 종교단체와 같은 민간 베이스로 저개발국가에 우리의 남아도는 고급인력을 보낸다면 그 나라의 개발과 발전에 도움을 주고 나아가 그곳에 한국을 심는다는 측면에서 잉여인력을 소중한 자산으로 활용하는 지혜가 될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순복음교회와 같은 기독교계통 단체에서 대규모인력을 내보내 해외 선교활동을 조직적으로 펴고 있는 것은 눈여겨 볼만하다.
고학력 실업의 당면한 문제에 장· 단기적 안목으로 접근하고 물어가는 능동적 노력이 시급한 때다. 대통령후보로 부각되는 네사람부터 이 문제에 대한 대책의제시가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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