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있는아침] '오리(五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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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오리(五里)'- 우대식(1965~)

오리(五里)만 더 걸으면 복사꽃 필 것 같은

좁다란 오솔길이 있고,

한 오리만 더 가면 술누룩 박꽃처럼 피던

향(香)이 박힌 성황당나무 등걸이 보인다

그곳에서 다시 오리,

봄이 거기 서 있을 것이다

오리만 가면 반달처럼 다사로운

무덤이 하나 있고 햇살에 겨운 종다리도

두메 위에 앉았고

오리만 가면

오리만 더 가면

어머니, 찔레꽃처럼 하얗게 서 계실 것이다


어느새 입춘이다. 시간의 바퀴는 쉼없이 굴러간다. 여기서부터 할미꽃.냉이.달래.두릅.동백꽃.개나리.유채꽃.찔레꽃.복사꽃까지가 오리(五里)이다. 오리는 눈을 한번 깜빡거리는 동안 가닿는다. 봄꽃 같은 당신, 당신에게 오늘 입춘방을 써 드리리. '수여산(壽如山) 부여해(富如海)'. 산처럼 건강하고 바다처럼 넉넉하시라.

<문태준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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