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남화풍 뿌리’ 석재 서병오 작품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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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압동초유지재(鴨東初有之才). ‘압록강 동쪽에서는 처음 난 인재’란 뜻이다. 1879년 흥선대원군은 친히 비단에 이 글씨를 적어 한 서예가에게 건넸다. 대구 출신인 이 서예가는 한양에까지 명성이 파다할 정도로 능력이 뛰어났다. 석재(石齋) 서병오(1862~1936) 선생 얘기다. 대구미술관은 서병오 작품전을 올해 첫 전시로 정했다. 전시회 이름은 ‘대구미술을 열다 : 석재 서병오전(展)’이다. 오는 5월 14일까지 그의 작품 100여 점과 관련 자료 40여 점을 4·5전시실에서 전시한다.

대구미술관서 5월 14일까지 열려 #대원군 ‘압록강 동쪽 첫 인재’ 호평

서병오 선생은 추사 김정희 이후 시(詩)·서(書)·화(畵) 세 분야를 모두 갖춘 인물이란 평가를 받는다. 뿐만 아니라 거문고와 바둑, 장기, 의술, 언변에도 뛰어나 팔능거사(八能居士)로도 불린다. 1907년 국채보상운동에도 적극 참여한 애국지사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그는 대구의 전통화단을 일으킨 선구자였다. 1920년대 들어 기존의 서울화단 외에도 호남화단·평양화단·영남화단 등 주요 지방 화단(화가들의 모임)이 새롭게 등장했다. 이 때 영남화단은 서병오가 주축이 됐다. 다른 화단에서 산수화를 주로 그렸다면 영남화단은 사군자화를 주로 다뤘다.

대구미술의 뿌리가 된 ‘교남시서화연구회’도 1922년 서병오가 설립했다. 이 연구회는 강습소 설치, 전시회·강연회 개최, 도서관 설립 등을 통해 대구 미술을 일으키고 후진을 양성하기 위해 노력했다.

계명대 이중희 교수는 『한국학논집』에 쓴 ‘대구미술의 형성과 특성’이란 글에서 “오늘날 영남과 전국에서 발견되는 ‘영남화풍’은 바로 서병오의 기반 위에 세워졌고 그의 후학들에게 이어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런 높은 업적에도 서병오는 그동안 제대로 주목 받지 못했다. 대구미술관 이정희 전시1팀장은 “전시를 통해 석재 서병오가 왜 오늘날까지도 대구 미술계의 주요인물로 손꼽히는지 확인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정석 기자 kim.jungse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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