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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억 챙긴 토익 대리선수, 사진 합성해 신분증 발급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2면

외국계 제약회사에 다니는 A씨(30)는 ‘투잡족’이다. 평일에는 회사에 다니고 주말에는 영어 대리시험을 봐주는 이른바 ‘대리 선수’였다. 미국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서울의 한 유명 사립대에서 생명공학을 전공한 A씨는 토익을 만점 받을 정도로 영어를 잘했다. 군 복무도 카투사(주한미군에 배속된 한국군)로 했다. 2013년 2월 대학 졸업 후 뛰어난 학점과 면접 실력으로 곧바로 외국계 제약회사에 취직한 A씨는 그해 9월 토익 대리 선수로 나섰다. 군 시절 알았던 동료에게서 대리 선수로 활동하면 쉽게 돈을 벌 수 있다는 얘기를 듣고서다.

유학생 출신 외국계 제약사 직원 #응시자 얼굴과 반반씩 합친 신종 수법

A씨는 “외국계 제약회사에 근무하면서 연봉 5000만원을 받았지만 유흥비를 마련하려고 토익 대리 선수로 나섰다”고 경찰에서 진술했다고 한다. 그는 인터넷에서 토익 시험 의뢰자를 물색했다. 그는 비밀 댓글을 남겨 대리 시험을 제안했다. 그렇게 해서 2013년 9월부터 2016년 11월까지 30명의 대리시험을 봐주고 1억원을 벌었다. 시험을 봐줄 때마다 300만~500만원을 받았다. A씨는 이 돈을 대부분 유흥비로 썼다.

A씨는 경찰의 단속을 피하기 위해 첨단 장비를 이용해 다수의 응시자에게 정답을 불러주는 방식을 택하지 않았다. 일대일로 의뢰자를 선정한 뒤 자신의 얼굴과 의뢰자의 얼굴을 컴퓨터로 반반씩 합성한 사진으로 자동차 운전면허증을 발급받아 시험장에서 감독관을 속였다. 주민등록증 발급에는 2~3주의 시간이 필요하지만 운전면허증은 사진을 가지고 가면 꼼꼼한 검사 없이 당일 바로 발급된다는 허점을 노렸다고 한다.

A씨는 또 갑자기 점수가 크게 오르면 토익위원회에서 경찰에 수사 의뢰한다는 사실을 알고 시험 성적을 조금씩 올려줬다. 하지만 3년 넘게 범행해 온 A씨는 인터넷 댓글을 보고 수사에 나선 경찰에 덜미를 잡혔다. 경찰은 A씨를 업무방해 혐의로 27일 검찰에 구속송치하고 대리시험을 의뢰한 20명을 같은 혐의로 불구속 입건했다. 나머지 의뢰인 10명은 조사하고 있다. 의뢰자는 대부분 승진·취업을 원하는 직장인·학생이었다.

김병수 부산경찰청 국제범죄수사대장은 “일대일로 계약해 대리시험을 봐주면 적발하기 상당히 어렵다”며 “시험 응시자를 지문으로 확인하는 방식이 대리 시험을 막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인데 비용 문제 때문에 도입이 안 되고 있다”고 말했다.

부산=이은지 기자 lee.eunji2@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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