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권력비리·선거법 위반자 사면 말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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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정부가 8.15 광복절을 맞아 14만여명에 이르는 대규모 사면.복권을 단행할 방침이다. 대통령이 경미한 법위반자에 대한 새로운 기회와 국민화합 차원에서 사면권을 행사하는 그 자체를 시비할 명분은 약하다. 그러나 그 시행이 너무 잦을 뿐 아니라 특히 선거사범이나 권력비리사범에까지 사면권을 남용하는 것은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이 때문에 사면심사위원회의 설치를 포함한 사면법의 개정이 필요하다는 논의가 오래 전부터 제기되어 온 것이다.

선거사범이나 권력비리사범에 대한 사면권의 적용이 엄격히 제한되는 것이 미국 등 선진국의 관행이다. 그래야 선거가 공명.공정해질 수 있는 터전이 마련되고, 권력부패의 온상이 억제될 수 있는 토양이 조성되기 때문이다. 정치개혁을 주요 국정개혁과제로 설정한 참여정부가 이번 사면에 선거법 위반자를 포함시킬 것이라고 한다.

이는 새 정부의 지향점을 부정하는 행위나 다름없다. 정치개혁의 출발점은 선거혁명이 돼야 하기 때문이다. 부정.부패선거가 이 나라 정치부패의 알파요 오메가라는 것은 우리 정치사가 증언하고 있다. 정치개혁을 올바로 하기 위해선 우선 정치관련법을 준수하고, 법규정이 비현실적이라면 법을 고쳐야지 사면권 남발로 해결하려 해서는 안 된다. 한 쪽으로는 정치개혁을 주장하면서 다른 한 쪽으로는 선거법 위반자에게 출마 기회를 주기 위해 법원판결을 뒤집는 것은 자가당착이다. 이러니 정권과 가까운 사람을 구제해주기 위해 사면권을 남발한다는 비난을 받아도 할 말이 없을 것이다.

또 공무원 사면 대상자는 12만여명으로 역대 셋째로 대상자가 많다고 한다. 이렇게 무더기로 사면을 단행해 인사기록에서 징계내용을 삭제해버리면 성실하게 일해온 수많은 공무원이 오히려 불이익을 받게 된다. 이러고도 공직기강을 다잡을 수 있을 것인지 염려스럽다.

사면권이 이처럼 남발되어서는 법질서를 세울 수가 없다. 3권 분립 정신을 존중하고, 특정 정권이나 행정부의 자의적 행사가 불가능하도록 사면법을 개정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