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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분수대

홍상수·김민희가 괘씸하세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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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전수진 기자 중앙일보 팀장
전수진정치부 기자

전수진정치부 기자

김민희는 예뻤다. 얼굴에서 빛이 났다. 일생의 사랑을 쟁취했다는 확신을 가진 이만이 뿜어내는 빛이었다. 남들이 뭐라든, 아니, 남들이 뭐라고 할수록 난 내 갈 길을 가겠다는 결의와 희열, 그리고 자만심이 느껴졌다.

연애박사인 척은 여기까지. 사실, 제3자인 내가 뭘 알겠나. 자고로 남녀상열지사의 내막이란 그 당사자들만 안다고 (사실, 그들도 모를 수 있다) 믿는 1인이다. 지난 일요일, 내 뜻과는 무관하게 시도 때도 없이 울려대는 스마트폰 뉴스 알람으로 김민희의 사진을 보고 이런저런 생각이 들었을 뿐. 김민희가 걸친 웃옷이 크다 싶었는데 어머나, 홍상수의 양복 재킷이란다. 2월 평균 섭씨 4도로 쌀쌀한 베를린이지만, (배우보다는) 패셔니스타로 먼저 이름을 날린 김민희 아니던가. 수상 소감에선 “감독님 존경하고 사랑한다”고 했고, 깍지 낀 손을 놓지도 않았다. 온 우주를 상대로 “우리 서로 사랑하니 건드리지 마삼”이라고 대담하게 선언한 거다. 굳이 알고 싶지도 않은데 각종 매체에서 22세 연상이라고 친절히 제목을 달아준 홍상수는 좀 지쳐 보였지만, 내 알 바 아니다. 내가 홍상수의 부인도 아니고(그분께는 진심으로 심심한 위로를 드린다).

그런데 인터넷 반응이 마음에 걸린다. “발칙한 가정파괴자 김민희는 이제 끝”이라거나 (홍상수도 끝이라는 말은 왜 안 나올까), 홍상수에 대한 은근한 부러움을 담아 “불륜은 했지만 세계가 인정했다”는 반응이 충돌한다. 근데 말이다. 이 불륜 커플이 그렇게까지 괘씸하신가. 그들에게 면죄부를 주자는 얘기가 아니다. 단지 그들을 단죄하겠다고 소중한 시간과 에너지를 들여 화를 낼 필요가 무에 있을까 궁금할 따름이다. 둘은 이런 반응을 보고 홍상수 영화 제목처럼 ‘잘 알지도 못하면서’ 떠든다고 ‘하하하’ 웃고 있을지도 모를 일. 분노할 시간에 정우성ㆍ현빈님이 나온 안구정화 영화를 보는 게 건강에 이롭다.

한국은 프랑스와는 다르지만(우열을 가리자는 건 아니다) 이번 프랑스 대선 후보로 나온 39세 에마뉘엘 마크롱과, 그보다 25세(!) 많은 부인 브리짓 트로뉴를 두고 손가락질하는 목소리는 별로 들리지 않는다. 트로뉴가 주름살을 숨기지 않는 쿨한 모습도 놀랍지만(마늘주사는 안 맞은 거 같다) 마크롱이 지지율 17%(지난 21일 기준)를 기록하고 있다는 것도 신기하다. 사실 우리 바쁜 인생에서 신경 쓸 게 얼마나 많은가. 여느 불륜 커플에게 거룩한 분노를 허락하기에 우린 이미 충분히 뜨거운 겨울을 보냈다. 이제 조금 쿨해지자. 봄이 오고 있다.

 전수진 정치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