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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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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면보기

종합 02면

<…초가 지붕에 박꽃/초가 지붕에 붉은 고추, 고추, 고추/모조리 몽땅 마스라 먹는데도/시원치 않은 시원치 않은/추석 달이 뜨네요. 추석달이 뜨네요.> 미당의 시 『추석』은 초가 지붕에 달덩이처럼 환하게 핀 호박꽃과 붉은 고추를 대비시키면서 고향의 추석을 노래했다.
그러나 우리네 시인들은 추석보다 달을 더 사랑했나 보다.
윤선도의 『오우가』에는 달이 시인의 벗이 되어 있지만, 정철의 『송강가사』에 나오는 달은 더욱 애절한 정한을 풍긴다.

<내 마음 버혀내어 저 달을 만들고 구만리 장천에 번듯이 걸려 있어 고운님 계시온데 가비최여나 보리라.>
최남선은 달을 노래하고, 달밤을 사랑한 것은 중국이 한발 앞서 있다고 했다.

<하늘에 달 있은지 그 몇해던가 잠시 잔을 멈추고 물어보노라. 사람이 뉘라서 저 달을 잡으리 달이 도리어 사람을 따라오는 것을….>
시선 이백에게 있어 달은 벗이며, 연인이며, 시 그 자체다. 오죽 했으면 강속에 비친 달을 건지려다 목숨까지 잃었겠는가.
같은 달이면서도 서양 시인들 눈에 비친 달은 다르다.

<보라, 달이 떠 오르는 것을 동쪽에서 떠오르는 은빛 둥근 달 지붕 위에서 아름답게 비치는 유령 갈은 거대하고 과묵한 달.> (「휘트먼」의 『두 병사를 위한 만가』에서)
그들도 달을 아름다운 것으로 보았지만, 그러나 창백하고 유령같은 이미지가 그 속에 도사리고 있다. 정감이 없다.
이처럼 같은 대상을 놓고도 시의 정취가 다른 것은 자연관의 차이 때문이다. 서양인들은 자연과 인간의 관계를 대립적인 것으로 보는 반면 동양인들은 서로 합일하는 것으로 보았다.
7일은 추석절. 한글날과 맞물려 장장 4일간의 황금 연휴가 시작된다.
특히 금년은 유례없는 수혜와 함께 노사분규 등 민주화의 홍역을 크게 치렀다. 그리고 모두 즐거운 발걸음으로 고향을 찾고 맞는다.
고향은 바로 우리에게 자연의 순수함을 일깨워 주는 곳이다. 밝은 달을 우러러보며 그 동안 몸과 마음에 끼었던 앙금을 말끔히 씻어버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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