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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두 보수당, 보수의 가치 알기는 하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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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박근혜 정부가 내일 출범 4년을 맞는다. 통상의 청와대라면 마무리 국정의 선택과 집중, 업적을 떠올리며 초심을 다질 때다. 그런 행사가 잇달아 열리는 게 일반적 풍경이다. 하지만 취임 4년의 박근혜 대통령에겐 남의 일이다. 범죄의 공범으로 지목된 박 대통령은 식물 상태로 전락했다. 그가 이끈 집권당은 대통령 탄핵당과 반대당으로 갈라서 사사건건 삿대질이다. 그러니 안보와 경제의 복합 위기 속에도 대한민국 국정은 표류 중이다.

화장만 고쳐 나온 두 보수당 #변변한 주자 없이 룰 싸움뿐 #책임·헌신만이 신뢰 회복 길

두말할 필요 없이 공사를 구분하지 못한 박 대통령과 친박의 책임이다. 내적으로 운영된 사설 정부가 사적 이익을 위해 국가 권력을 동원하고 이용했는데, 이걸 엄호했거나 최소한 방조했다. 4년 전 절반이 넘는 유권자가 박 대통령을 선택한 건 ‘원칙과 신뢰’에 대한 그의 진심을 믿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믿음은 산산조각이 났다. 박 대통령에 대한 탄핵 찬성 여론은 80%에 육박한다. 헌재에서 탄핵이 인용되든 기각되든 박 대통령이 정상적인 국정을 수행할 수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중요한 건 오만과 불통, 오기와 아집으로 스스로를 망치고 보수를 분열시킨 박 대통령과 친박이 보수의 기반마저 망가뜨리고 있다는 점이다. 집권당인 자유한국당 지지율은 10%를 겨우 넘고 바른정당은 한 자릿수를 맴돈다. 두 보수 정당에선 변변한 대선주자가 한 명도 없다. 진보 후보 두 명이 나란히 1, 2위를 차지하는 이례적 현상이 계속되고 있다. 그런데도 이렇게까지 외면받는 보수당들이 아직도 진정한 보수 개혁을 외면하고 있으니 안타깝고 한심한 일이다.

집권 새누리당은 겉으론 혁신을 내세우며 자유한국당으로 간판을 바꿔 달았다. 친박당 이미지를 털어내기 위해서라는데 친박 노선과 입장엔 변화가 없다. 최순실 사태 이후 희생된 사람도 거의 없다. 대신 모두가 제 살길 찾기엔 일등이어서 지지율 없는 대선 주자만 10여 명이다. 새 보수, 진짜 보수의 구심점이 되겠다는 바른정당 역시 다를 게 없다. 창당 후 한 달이 지났지만 보여준 거라곤 존재감 없는 후보들 간의 경선룰 다툼이 전부다.

견제와 균형이 민주정치 요체다. 보수와 진보의 양대 가치가 공존하고, 이를 대변하는 두 세력 간의 건전한 경쟁으로 국가와 사회가 발전하는 게 바람직한 민주주의 모습이다. 그런 점에서 보수의 궤멸은 우리 사회엔 재앙이다. 더구나 지금의 보수 위기는 보수와 진보 대결에서 보수가 패했기 때문이 아니다. 같은 보수 세력 내에서 노선 갈등으로 분열된 것도 아니다. ‘박근혜 정치’로 상징되는 정당 민주주의의 외면과 친박 사당(私黨)화가 빚어낸 참사다.

보수가 위기를 극복하려면 계파 이익만을 앞세운 패거리 정치, 맹목적 충성 등 보수를 추락시킨 원인을 걷어내는 게 출발선이다. 책임과 헌신이란 보수의 가치는 되살려야 한다. 새 간판으로 은근슬쩍 책임을 가리고 ‘샤이 보수 토론회’나 연다고 가능한 일이 아니다. 바른정당도 진짜 보수를 실천하려면 나라의 안위와 국민 경제를 무한 책임지겠다는 진정성을 정책과 메시지로 보여줘야 한다. 무한의 쇄신 경쟁만이 보수가 살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