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승민은 알바생의 눈물을 닦아줄 수 있을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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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설과의 싸움에서 이길 수 있을까.

'최저임금 1만원' 인상 공약은 '역설'과의 싸움

여야의 대선 주자들이 연일 각종 정책을 쏟아내고 있다. 그 중에서도 볼 때마다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드는 정책이 시간당 최저임금을 1만원으로 올리겠다고 공언하는 공약들이다. 상대적으로 튀는 정책과 목소리를 내는 후보로 평가받는 더불어민주당 소속의 이재명 성남시장이 일찍이 취임 3년 이내에 최저임금을 1만원으로 인상하겠다고 공약했고, 경제학자 출신의 바른정당 유승민 의원도 23일 그 대열에 합류했다.

김경록 기자

김경록 기자

유 의원은 “‘임금 없는 성장’이 현실이 되고 전체 근로자의 4분의 1이 저임금 근로자인 지금의 상황에서는 최저임금 인상만이 거의 유일한 해법”이라며 “최저임금은 노동의 가치에 대한 존중도를 가늠하는 사회적 척도인 만큼 이제는 최저임금을 인권 및 공동체윤리의 관점에서 접근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경제학 박사로서 한국개발연구원(KDI) 출신인 유 의원은 국회의원 중에서도 손에 꼽히는 경제 전문가로 통한다. 그런 그가 최저임금 인상 정책을 들고 나왔으니 눈길을 주지 않을 수가 없다. 기초 수준의 경제학 수업을 들어본 사람이라면 ‘최저임금이 비숙련 노동자의 일자리를 줄인다’는 명제를 들어봤을 것이기 때문이다. 쉽게 말해 별다른 기술이 없는 사람에게 의무적으로 돈을 많이 주라고 하면 고용주는 차라리 사람을 덜 뽑는 방식으로 대응한다는 것이다. ‘최저임금의 역설’이란 말은 그래서 나왔다. 아파트 경비원에게 주는 최저임금의 인상이 해고 통지의 부메랑으로 돌아왔다는 기사가 종종 우리 언론에 나오는 게 대표적 사례다.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을 유도하기 위해 2년 이상 근무를 하면 정규직으로 전환하도록 비정규직보호법을 만들었더니 오히려 ‘2년 짜리’ 일자리만 양산하고 정규직화는 거의 이뤄지지 않는 것도 그런 역설 중 하나다.
물론 ‘나쁜 사장님’이 많기 때문에 선의로 만든 정책을 악용하고 있는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악용을 부추기는 제도라면 선의로 만든 법도 악법이 될 수 있다. 그래서 경영자 단체나 시장주의자들은 최저임금제도는 나쁜 제도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런데도 정치인들은 꾸준히 최저임금 인상을 부르짖고 있다. 미국 대선에 민주당 후보로 나섰던 힐러리 클린턴 역시 2015년에 패스트푸드 종업원의 편에 섰다. 이른바 ‘15달러를 위한 투쟁(Fight for $15)’에 동조하며 “저임금 근로자들의 챔피언이 되고 싶다”고 외쳤다. 이런 외침이 단순히 공허하게 끝나지도 않았다. 지난해 11월 미국 대선과 함께 19개주에서 최저임금 인상안이 통과됐기 때문이다. 뉴욕을 비롯한 3개주는 최저임금이 최고 11달러(약 1만2500원)가 됐다. 여전히 미국 연방의 최저임금은 7달러25센트지만, 뉴욕과 캘리포니아 등에선 앞으로 4~5년 내에 ‘15달러를 위한 투쟁’이 현실화될 예정이다.

미국이 이런 결정을 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최저임금 인상이 일자리를 줄이지 않았다는 연구가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 경제정책연구센터의 경제학자 딘 베이커(Dean Baker) 그리고 존 슈미트(John Schmitt)는 “고용주는 단순히 임금만 신경쓰는 게 아니라 노동자의 생산성도 신경쓰기 때문에 최저임금 인상이 일자리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분석했다. 돈을 더 주니까 노동자는 더 열심히 일해서 생산성이 높아진다. 또한 새 직원을 뽑으려면 채용공고부터 면접까지 각종 시간과 비용이 투입돼야 하고, 이들에게 기초적인 훈련을 시키는 것도 모두 비용이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연구 결과에서도 최저임금이 비숙련 노동자 사이의 소득 형평성까지 만족시켜준다는 결과는 없다. 이미 진입해 있는 비숙련 노동자는 더 좋은 혜택을 누리겠지만 새로 구직을 하는 사람의 입장에선 더 장벽이 높아진 것은 분명하기 때문이다. 한국노동연구원의 2011년 ‘최저임금 효과분석’ 보고서는 “최저임금제도 하에서 취업하지 못하는 비숙련 노동자의 경우 소득의 대폭적인 감소를 경험하게 된다”며 비숙련 노동자 사이의 양극화 문제를 새롭게 만들어 내는 걸 지적하고 있다.

모든 제도에는 장점과 단점이 공존한다. 사실 따지고 보면 단점이 없는 제도가 있다면 일찍부터 도입됐겠지 왜 뒤늦게 도입이 되겠는가. 물론 각종 이해당사자의 로비 문제 등은 제외할 때에 한해서다.

유승민 의원은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고용감소를 피하기 위해서, 또 자영업자 등 영세업체 사업주의 부담을 줄이기 위해서 최저임금 인상이 빠르게 올라가는 향후 3년 동안 영세업체 근로자의 4대 사회보험료를 국가가 지원하는 보완장치를 강구하겠다”는 보완책도 제시했다. 부작용을 최소화하겠다는 의지다. 물론 부작용을 세금으로 줄이겠다는 게 진정한 대안이 될 수 있을지는 별론이다.

올해 우리나라의 시간당 최저임금은 6470원이다. 지난해(6030원)에 비해 7.3%(440원)가 올랐다. 그런데 유 의원은 2018년부터 연평균 약 15%씩 인상해 2020년에 ‘최저임금 1만원’을 달성하겠다고 한다. 인상률을 두 배로 높이자는 건데 쉽지 않을 일이 될 게 뻔하다.

우리 사회의 소득 양극화 문제 그리고 비정규직 문제는 워낙 심각하기 때문에 어찌 보면 모두가 무리라고 생각할지라도 ‘고르디우스의 매듭’을 풀듯이 단숨에 제도를 바꿀 필요가 있을 수 있다. 그러려면 각 경제주체의 이해대립을 조정하고 설득하는 피나는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유 의원이 진정 알바생의 눈물을 닦아주기 위해 고심하며 이 공약을 발표했다면, 그 만큼의 눈물을 함께 흘릴 각오가 돼 있어야 할 것 같다.

허진 기자 b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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