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견·투쟁 내세워 서로 「적임」주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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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이런 사람이 대통령이 되어야한다.』
『그런 사람은 안 된다.』
두 김씨가 국민에게 공약한 대통령 후보 단일화 매듭시한(9월30일)이 임박하면서 민주당 주변엔 대통령 후보 자격시비가 한창이다.
○…지난23일 동교·상도 양 계파 대표인 이용희·김동영 부총재가 후보조정을 위해 대면한 자리에서 처음으로 「자격」문제가 공식거론 된 이래 양쪽은 계보 신문·유인물·회의· 단합대회 등을 통해 한 발짝이라도 밀릴세라 치열한 공방전을 벌이고 있다.
당시 두 부총재는 회동을 끝낸 뒤 『나이로 봐도 김대중 고문은 이번이 마지막 기회이니 정치를 떠나 인간적으로 사정한다』(이부총재), 『「시국」을 돌아볼 때 모든 계층·세력으로부터 거부감이 없는 김영삼 총재여야 민주화를 완성시킬 수 있다』(김부총재)고 맞서다 결론을 내지 못했다고 발표했었다.
이날 두 사람은 공개하기 거북한 이야기까지 서로 솔직히 털어놓고 견주어봤다고 한다.
이부총재는 △김총재가 나이도 젊고 건강도 좋으니 다음 기회를 볼 수 있다 △김고문의 숱한 수난 △광주사태를 원만히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정치인 △능력 △지역문제 등을 들어 김고문이 후보가 돼야 한다고 역설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에 대해 김부총재는 △지역감정 유발을 막고 △선거에서의 승리 가능성이 높으며 △「현실적인 문제」를 열거한 뒤 문제의 「비토 그룹」을 발설했다는 것이다.
김부총재가 「비토 그룹」에 대해 정확히 어떤 말을 건넸는지는 알 수 없지만 22일자 「민족문제 연구소 회보」를 보면 대충 짐작할 수는 있다.
회보엔 15일자 미 월 스트리트 저널지 기사를 일부 번역, 옮겨 실었는데 『한국내 군의 개입 가능성』 『김대중씨가 후보가 된다면 그것은 군이 용인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서는 것이 될 것』 『사적인 장소에서 군 장교들은 김대중씨에 대한 불신과 혐오감을 표시, 군에 의해 과거 자기가 당한 보복을 할 사람』등의 내용이 담겨 있다. 「비토 그룹」이야기는 동교동 쪽에 전해지면서 별도의 시비로 번져 인천방문을 위해 만들어진 유인물에선 『정치군인들이 싫어하기 때문에 김대중은 대통령이 안 된다? 이 얼마나 국민을 무시하는 굴욕적이고 패배주의적인 논리인가?』고 반문하면서 『수치를 모른 채 어처구니없는 주장을 펴고 있다』고 반박했다.
민족문제연구소는 안병만 교수(외대)를 초청, 강연회를 가졌는데 안교수는『2·12 총선을 주도하는 등 씨뿌린 자가 열매를 거둬야한다』고 역설하곤 『약속을 어기는 사람은 정치불신·정치파멸을 낳는다』는 말로 김고문의 불출마선언을 환기시켰다.
반면 민권회에서 양순직 부총재는 『곧 관심 있는 지식인·재야 등에서부터 광주문제 해결, 민중적 문제 수용, 통일지향 등을 들어 김고문이 「적격한 후보다」라는 말이 자연발생적으로 나올 것』이라고 자신하곤 『「비토 그룹」얘기는 국민 사이에 저항감을 낳고 있다』고 상도동쪽을 꼬집었다.
○…일반적으로 김총재 쪽은 △단식투쟁, 2·12 총선 주도 등 80년 이후 민주화 투쟁을 강조한 소위 「씨앗론」 △원활한 정권교체 △정권교체후의 갈등, 사회 분열을 최소화시킬 수 있는 관리능력 등을 강점으로 내세우며 「비토 그룹」, 불출마선언 등을 무기로 삼고있음을 알 수 있다.
이에 반해 김고문 쪽은 △5차례 죽음의 고비 △피해 당사자로서의 보복방지 적임자 △통치능력 등을 앞세우면서 「타협주의」「무정견」등을 대상도 공격 자료로 준비하고 있다.
동교동 사람들이 『한 차례의 단식을 다섯 번의 사경과 비교할 수 있느냐』면서 감옥·망명·연금 등 화려한(?) 경력을 자랑하면, 상도동 사람들은 『그 쪽이 수난을 받았을지언정 줄기차게 투쟁해오긴 우리 쪽』이라며 유신반대 선언이래 신민당창당, 총선 참여·승리, 6월 혁명 등 「7대 결단」을 들고 나온다.
상도동쪽이 『호남인의 한은 그것을 가장 깊이 이해하는 비호남인이 풀어야한다』고 말하면 동교동 쪽은 『광주방문 때 망월동에서 흘린 눈물의 의미를 알아야 한다』고 맞서고 있다.
동교동 쪽이 김고문을 『지식의 소유자』로 내세우면 상도동 쪽은 김총재를 『견식의 소유자』로 치켜세우고 김고문의 『논리와 신념』엔 김총재의 『예견과 결단』을 들어 장군멍군 식이다.
캐치프레이즈로는 김총재 쪽이「편안하고 정직한 이웃」「한과 고통의 정치인보다 화해와 관용의 정치인」「합리적 의회 민주주의자」「새벽을 여는 사람」「솜 같고 강철같은」 「선명하지만 과격치 않다」등을 준비하고 있다. 「기피 받지 않는 온건한 인물」임을 내세워 중산층 등의 안정된 변화 욕구에 어필하려는 생각이다.
이에 대해 김고문 쪽은 「노벨 평화상 후보자」로서 「평화와 화해의 사도」「용기와 양심」 「현대사의 아픔을 치유할 지도자」「직선제 관철자」「김일성을 이겨낼 유일한 정치인」「대중의 결단·대중의 선택」등을 마련해놓고 있다. 수난과 투쟁을 바탕으로 재야·학생 등에 대한 호소력에 강조점을 두고 있다.
○…단일화 가능성이 좀처럼 보이지 않자 재야 쪽에서도 후보자격론을 들먹이며 꿈틀거리고 있다. 재야의 움직임은 자발적인 측면도 있으나 양 계파의 집요한 접근에 의해 영향을 받는 일면도 있다.
국민운동본부는 지난번 회의에서 『새 정부는 자주평화 통일지향, 군정종식과 광주희생자 원상회복, 민중의 생존권보장을 추진해야한다』는 발표로 이미 후보자격을 암시했고 자신들이 설정한 10월5일 시한에도 단일화가 안되면 구체적 조건을 제시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민통련도 곧 「견해」를 밝히고 「두 김」중 「한 김」을 지지할 것이란 소문도 나돌고 있다.
동교동 쪽은 재야 쪽의 지지를 자신, 『전대협의 27일 두 김씨 초청강연도 학생들과 우리 쪽의 사전 상의에 의한 것』(김현수 의원)이라고 말할 정도나 상도동쪽은 『학생들은 정치문제인 만큼 중립을 지키기로 했고 재야지도자들은 이미 우리 쪽을 지지하고있다』고 아전인수 식 해석.
양 진영의 자격시비가 아직까지는 자기 쪽이 후보가 돼야한다는 당위론·불가피론에 머무르고 있으나 단일화시한을 넘기고 경쟁이 본격화되면 상대방에 대한 「부적격론」, 더 나아가 인신공격까지로 발전돼 이전투구가 될 가능성마저 없지 않다.
이미 대구지역 유인물에서 유신 때 귀국한 사람과 귀국하지 않은 사람을 비교해 「이스라엘-아랍유학생」이야기가 등장했고, 민주당주변 괴문서에선 「내각제타협운운」이야기가 실리는 등 점잖지 못한 양상의 조짐을 보이고 있다. <허남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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