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한 당신] 식중독균으로 암 치료, 획기적 유전자 변형 기술 개발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06면

세균으로 암환자를 치료하는 시대가 올 수 있을까. 그것도 우리 몸에 식중독을 일으키는 균으로 말이다. 최근 이런 가능성을 확인한 연구가 발표돼 세계적인 주목을 받고 있다.

병원리포트

화순전남대학교병원 민정준(핵의학과)·이준행(미생물학교실) 교수 연구팀은 식중독균인 살모넬라균 유전자를 변형시켜 암 치료용 박테리아로 만드는 데 성공했다고 밝혔다. 살모넬라균은 사람이나 동물의 장내에 기생하는 병원성 세균으로 식중독과 장티푸스 등 그 종류에 따라 각종 감염성 질환을 일으킨다.

연구팀은 살모넬라균이 암세포만 골라 공격하는 특성에 주목했다. 살모넬라균은 정상 조직에 비해 암 조직에서 10만 배가량 잘 자라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연구팀은 우선 살모넬라균의 암 치료 효과를 높이기 위해 유전자를 변형했다. 먼저 정상 세포에 악영향을 미치지 않도록 살모넬라균의 독성을 크게 줄였다. 하지만 독성을 줄이면 암세포에 대한 공격력도 줄어든다.

그래서 연구진은 신체 면역세포가 암세포를 공격하도록 했다. 이를 위해 또 다른 식중독균인 비브리오균에서 ‘플라젤린(flagellin)B’라는 면역유발물질을 생산하는 유전자를 추출해 살모넬라균의 유전자에 끼워넣었다. ‘플라젤린B’는 인체의 면역세포인 대식세포를 불러모은다. 대식세포는 ‘플라젤린B’가 나오는 암세포를 외부에서 침입한 세균으로 생각하고 잡아먹는다.

즉, 살모넬라균이 암으로 군대(면역세포)를 끌어들이는 역할을 하게 한 뒤 플라젤린B가 이 군대에 발포 명령을 내리도록 한 것이다. 민정준 교수는 “암 면역치료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는 현 시점에서 독특한 형태의 새로운 암 면역치료 기술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연구팀은 동물실험에서 살모넬라균의 암 치료효과를 확인했다. 대장암에 걸리도록 유전자를 조작한 실험용 쥐 20마리에게 살모넬라균을 주입했다. 그 결과 11마리에서 암 조직이 완전히 사라졌다. 연구팀은 “대장에 처음 발생한 암뿐 아니라 간이나 복부로 전이된 암까지 줄어드는 치료 효과를 보였다”며 “치유율이 85%를 웃돌았다”고 밝혔다. 민 교수는 “이를 임상에 적용할 수 있는지의 가능성을 타진하기 위해 다른 동물을 대상으로 추가 연구와 독성 테스트를 진행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이전에도 세균을 이용한 항암 치료연구는 있었다. 하지만 대부분 종양이 재발하는 경우가 많아 항암제 개발로 이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이준행 교수는 “이번 연구처럼 유전자를 변형한 박테리아를 사용하면 치료효율이 훨씬 높은 항암제를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번 연구는 미래창조과학부의 미래유망 융합기술 파이어니어 사업, 보건복지부의 질환극복기술 개발사업으로 진행됐다.

한편 이번 연구결과는 국제학술지 ‘사이언스 중개의학(Science Translational Medicine)’ 온라인 표지 논문으로 실렸다.

류장훈 기자 jh@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