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대법원 5 : 4로 보수화 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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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보수 성향의 새뮤얼 얼리토 미 연방대법관 후보자가 24일 상원 법사위원회의 인준 관문을 통과했다. 법사위 표결 결과는 공화당과 민주당의 색깔을 그대로 드러냈다. 공화당 의원 10명은 모두 찬성표, 민주당 의원 8명은 전부 반대표를 던진 것이다.

얼리토에겐 이제 상원 전체회의 표결 절차만 남았다. 이걸 통과하면 대법관이 된다. 총원이 9명인 대법관에 그가 가세할 경우 대법원은 보수로 기울게 된다. 보수 성향이 5명으로 진보보다 1명 많아지기 때문이다.

◆ 남은 관문도 통과할 듯=민주당엔 얼리토의 인준을 저지할 뾰족한 수단이 없다. 필리버스터(의사 진행 방해 행위)로 상원 전체회의 표결 자체를 봉쇄할 수 있지만 너무 극단적인 카드여서 쉽게 꺼낼 수 없는 처지다. 민주당에서 이 전략을 구사하자는 말이 없는 건 아니지만 지도부는 신중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해리 라이드 상원 원내총무 등 당 지도부의 측근들은 "필리버스터를 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말했다고 워싱턴 포스트가 25일 보도했다. 민주당이 필리버스터를 동원하지 않는 한 얼리토는 상원 전체회의 표결도 무난히 통과할 것으로 예상된다. 상원 의석 100석 중 공화당이 55석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 보수로 가는 대법원=지난해 윌리엄 렌퀴스트 전 대법원장이 사망한 이후 대법원은 급속히 보수화하고 있다. 보수주의자인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같은 색깔의 인물을 대법관으로 고르고 있기 때문이다.

렌퀴스트 후임인 존 로버츠(50) 대법원장은 낙태 합법화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밝히는 등 보수 성향이다. 그런 그에 이어 얼리토가 대법관으로 지명되자 민주당 등 진보진영은 앞으로 보수주의자의 입장을 반영하는 판결이 줄줄이 나올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

무엇보다 관심을 끄는 건 낙태 문제다. 얼리토가 가세하는 대법원에선 낙태를 합법화한 '로 대(對) 웨이드' 사건 판결(1973년)이 뒤집힐 수도 있다는 관측이 나오기 때문이다. 얼리토는 85년 "미국 헌법은 낙태권을 보장하지 않는다"는 메모를 남긴 적이 있다. 그는 법사위 청문회에서 "낙태 문제에 열린 마음으로 임하겠다"라며 다소 유연한 태도를 보였다.

그러나 "73년 판결을 바꿀 것이냐"는 물음에는 분명한 답변을 피했다. 대법원이 최근 안락사를 간접 지지하는 판결을 냈지만 얼리토가 대법관이 되면 또 어떤 입장이 나올지 모른다. 대법원은 동성애 문제와 관련해서도 보수적 판결을 낼 가능성이 커졌다.

◆ 중간선거에 어떤 영향 미칠까=얼리토에 대한 인준 절차는 곧 마무리된다. 공화당은 부시 대통령의 국정연설 예정일인 31일 전에 상원 전체회의 표결을 끝낸다는 방침이다. 하지만 그후에도 '얼리토 이슈'는 사라지지 않을 전망이라고 뉴욕 타임스 등이 보도했다. 공화당과 민주당이 그걸 11월 중간선거의 쟁점으로 삼을 방침이기 때문이다. 공화당은 "상원 인준 과정에서 나타난 민주당의 행태는 국정 발목 잡기"라며 이를 집중 선전한다는 방침이다. "그런 민주당이 중간선거에서 승리하면 정치 혼란이 올 것"이라는 말을 전파하겠다는 것이다.

반면 민주당은 "부시 정권이 사법부마저 장악한 만큼 이제 의회가 견제할 수밖에 없다"는 논리로 표를 모은다는 전략이다. 이를 위해 각종 진보단체와 연대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이상일 기자

*** 바로잡습니다

1월 26일자 10면 '미 대법원 5:4로 보수화된다'는 제목의 기사와 관련된 인물 사진 2장이 틀렸습니다. 9명의 대법관 사진 중 새뮤얼 얼리토 대법관 후보자와 앤서니 케네디 대법관 사진이 잘못 실렸습니다. 얼리토라고 나간 사진의 주인공은 케네디 대법관입니다. 두 사람의 얼굴이 비슷해 이런 실수가 벌어졌습니다. 케네디 대법관이라고 한 사진은 지난해 작고한 윌리엄 렌퀴스트 전 대법원장입니다. 결국 이날 기사에 얼리토의 사진은 실리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이 난에 게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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