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me] 디스크에 이어폰만 꽂아도 ♪♩♬ 한국발 음·악·혁·명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0면

사람들 시선이 버튼 몇 개 달린 지포 라이터만 한 플라스틱 상자에 집중됐다. 이어폰을 꽂자 음악이 흘러나온다. 버튼은 볼륨을 조절하고 음악을 멈추거나 다음 곡, 이전 곡으로 건너뛰기 위한 것. CD플레이어나 MP3플레이어도 필요 없다. 이어폰과 AAA사이즈 건전지 하나면 즉석에서 음악을 즐길 수 있다. 외국인 바이어들의 귓가를 맴도는 것은 가수 '비'의 노래. 이들의 얼굴에 놀라움이 스쳐 지나갔다. 누군가 말문을 열었다. "바로 우리가 찾던 모델이에요. 이건 혁명이군요, 혁명…." 프랑스 칸에서 21일 개막된 '미뎀(MIDEM) 2006'현장. 세계 최대의 음악산업 전시회장으로 꼽히는 이곳을 '디지털 한류'가 급습했다. 수많은 외국인을 반하게 한 디지털 한류의 현장 속으로-.

이어폰을 꽃기만 하면 음악을 들을 수 있는 차세대 디지털디스크. 작은 사진 왼쪽부터 이 디스크를 개발한 이지맥스 이영만 대표, 한국 전시관, 모토로라 전시관, 소니 전시관 모습.

#한국발 디스크 혁명 일어날까

현재 미뎀에서 가장 주목받고 있는 것은 차세대 디지털 디스크. MP3플레이어를 제조하던 작은 벤처기업 이지맥스가 개발해 세계 최초로 선보였다. 삼성전자의 플래시 메모리를 내장해 CD 한 장 분량이 쏙 들어간다. 디스크와 연결되는 외부 장치라고는 건전지와 이어폰뿐. CD나 MP3 파일처럼 음원이 유출될 가능성이 전혀 없다. 불법 복제와 무료 다운로드에 악화일로를 걷던 음반업계 관계자들의 눈이 번쩍 뜨일 수밖에.

이지맥스 이영만 대표는 "음질도 CD에는 못 미치지만 기존의 MP3를 능가한다"며 "이 형태의 디스크로 음반을 내면 불법 복제는 불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엔터테인먼트 회사 세도나미디어는 음원 공급을 맡았다. 이번 전시회용 샘플로 비.아이비.포지션.테이크 등의 음악을 담았다. 22일 첫날 부스를 오픈하자마자 샘플 150개가 동났다. 유럽에 공장을 지어 납품해 달라고 제안하는 바이어도 있었다. 미뎀 측이 VIP 회원 160명을 위해 마련한 '미뎀 40주년 기념 디스크'도 이들이 제작했다.

이지맥스 부스에는 행사 내내 외국 바이어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미뎀 총책임자인 도미닉 레그런도 샘플을 보고 "신기하다. 무척 흥미롭다"를 연발했다. 세도나미디어 박현 기획이사는 "EMI 뮤직 수석부사장 등 대형 음반 유통사 관계자들이 모두 부스에 찾아와 예상보다 뜨거운 관심을 보여 놀랐다"고 말했다.

현재 개당 단가는 9~12달러에 음원 사용료까지 들어가면 약 20달러 수준. 물론 수요가 늘면 개당 10달러 아래로 떨어뜨릴 수 있단다. CD가 비싸고 상대적으로 불법 복제에 완고한 일본이나 유럽에서는 경쟁력이 있다는 얘기다. 장난감이나 기념품 수준이 아닌 '차세대 음반'으로 자리매김하기 위해서는 MP3에 익숙한 소비자의 마음을 어떻게 빼앗을지가 관건이다.

#디지털 음악 서비스, 한국이 선두

"멋지다 멜론." 22일 오후 열린 미뎀넷의 모바일 분야 콘퍼런스. 사회자는 연설을 맡은 SK텔레콤 조원용 차장을 한국말로 이렇게 소개했다. 회의가 끝난 뒤 그의 앞에는 긴 줄이 늘어섰다. 질문을 하려는 사람들이다. SK텔레콤은 컴퓨터 없이 모바일 무선 인터넷으로 MP3를 내려받는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는 세계 유일의 회사다. 대개는 컴퓨터에 휴대전화를 연결해야 음악을 다운로드할 수 있다.

조 차장은 "지난해까지는 국내 서비스를 견고히 하는 데 집중했지만 올해부터는 해외 시장에 본격적으로 진출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2000만 명의 가입자를 확보하고 있는 터키의 이동통신사 '터키셀'이 멜론의 서비스 모델을 도입하고 싶다는 의사를 이미 타진해 온 상태다.

문화관광부 박위진 콘텐츠진흥과장은 "한국 가수의 음악을 히트시키는 것만이 한류는 아니다"며 "한국의 앞선 디지털 음악 기술을 수출함으로써 문화 콘텐트도 함께 전파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거스를 수 없는 흐름, 디지털

1966년 시작해 올해로 40주년을 맞은 미뎀의 최대 화두는 '디지털'이다. 디지털에 관련된 화두만 전문적으로 논의하는 '미뎀넷'이 21.22일 이틀간 꼬박 열렸다. 미뎀 행사장에서는 노키아.마이크로소프트.아이팟.모토로라.냅스터.아이모드 등 정보기술(IT)과 휴대전화 업체 등의 광고가 목 좋은 곳을 독차지했다. CD플레이어 대신 컴퓨터나 휴대전화에 헤드폰을 연결해 샘플 음악을 듣는 것은 보기 흔한 풍경이었다. 모토로라는 자동차까지 동원해 전시 부스를 마련했다. 휴대전화를 자동차에 연결해 차세대 음악 방송을 들을 수 있는 서비스를 홍보하기 위해서다. 핀란드는 자국의 대표적인 휴대전화 브랜드인 노키아와 함께 대규모 음악 파티 등을 열었다.

MP3(디지털 음원 압축 기술의 하나) 표준을 마련한 것으로 유명한 독일의 프론호퍼(fraunhofer) 연구소도 부스를 차렸다. 디지털 음원으로도 홈시어터 같은 5.1채널 서라운드 입체 음향을 들을 수 있는 기술을 선보이기 위해서다. 2개의 헤드폰을 통해 마치 5개의 스피커로 듣는 듯한 느낌을 주는 '버추얼 스테레오 음향'에 많은 사람이 관심을 표시했다. MP3의 가장 큰 단점이었던 '낮은 음질'에 대한 새로운 대안을 제시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전통적 오프라인 음반 시장의 퇴조는 미뎀에서도 확연히 나타났다. 저스트 뮤직 김선국 대표는 "지난해에 비해 외국 바이어의 수가 눈에 띄게 줄었다"며 아쉬워했다. 바이어를 연결해 음반 수입과 수출을 이뤄지게 하던 미뎀의 전통적인 기능은 점차 줄어들고 있는 것이다.

미뎀 총책임자 도미닉은 "3~4년 전부터 디지털 미디어 없이는 음악 산업이 돌아갈 수 없는 추세"라며 "유럽보다 디지털 음악 기술이 3~5년 앞선 한국의 적극적인 참여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미뎀에서 한국 부스를 운영하고 있는 한국문화콘텐츠진흥원도 변화를 꾀하고 있다. 안석준 음악산업팀장은 "내년에는 CD 위주의 전시에서 벗어나 한국 음악과 디지털 서비스의 수준을 입체적으로 체험할 수 있는 전시관을 꾸미겠다"고 밝혔다.

칸(프랑스)=이경희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